오피니언 사설

타임오프 기본 정신 훼손돼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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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타임오프(유급 근로시간 면제) 제도는 과도기적 장치로 볼 수 있다.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일한 것으로 인정받아 임금을 받으며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 즉 타임오프는 올 1월 개정 노조법에 삽입됐다. 1997년 개정된 노조법상 ‘노조 전임자는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13년간 유예돼오다 전면 시행을 앞두고 나온 타협안이었다. 노동운동의 급격한 위축(萎縮)과 충격(衝擊)을 완화하려는 조치였다.

최근 결정된 타임오프 한도가 노동계로선 버거울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10분의 1 수준까지 축소하는 등 노조 전임자를 확 줄이기도 체면상 껄끄럽고, 그렇다고 조합원에게 돈을 더 거둬들여 전임자를 유지할 수도 없으니 난처한 노릇이다. 내부 강경론에 밀린 갈등도 예상된다. 타임오프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반발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보인다. 그제 한국노총은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과 맺은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타임오프 무력화 투쟁을 선언했다.

‘유급 전임자’라는 해묵은 관행(慣行)을 졸지에 바꿔야 하는 노동계의 고통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사용자에게서 돈 받으며 하는 노동운동을 순수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관행이 수많은 ‘꾼’과 ‘귀족’을 배출하며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을 굴절시켜 왔다는 지적을 마냥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노동계에 타임오프는 노동운동의 독립성과 정당성이란 궁극적인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노조가 형편에 맞게 제 살림을 스스로 꾸려가며 당당하게 존재하는 것, 그게 타임오프에 담긴 기본 정신이라고 본다.

사용자와 정부도 방만한 노조로 만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울 수 없다. 이젠 적당히 타협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조에) 타임오프 한도 이내로 전임자를 줄이도록 요구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파업도 감수할 것”이라는 현대·기아차그룹 측의 입장은 그래서 신선하다. 타임오프의 정착은 노사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