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돼지가 죽어도 10분이면 보고되는데 함정 침몰했는데도 보고 늦다니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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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참석 지휘관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했다. 대통령이 전군지휘관회의를 주재하기는 1948년 건군 이래 처음이다. [조문규 기자]

건군 62년 만에 대통령이 첫 주재한 4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는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숙연한 분위기”(청와대 고위 관계자) 속에서 진행됐다.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회의는 이명박 대통령 모두연설→김태영 국방부 장관 보고→이상의 합참의장을 포함한 주요지휘관들의 발표→대통령 맺음말 순으로 1시간45분간 진행됐다. 국민의례 때 이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회의를 주재한다’는 의미로 태극기 앞에서 거수경례했다.

TV로 생중계된 모두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변화에 둔감하고 혁신에 게으른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군 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우리 군을 믿는다. 군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안팎에서 불신과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힘도 실어줬다.

이 대통령의 연설 뒤엔 반성으로 가득 찬 김 장관의 보고가 이어졌다. “군의 가장 기본인 경계작전 임무 수행 중 기습을 허용했다… 적을 발견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부족했고, 경계작전의 허점을 노출했다. 분단의 장기화로 ‘항재전장’(恒在戰場·항상 전장에 있는 것처럼 인식) 의식이 부족했다. 적의 능력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고, 우리의 첨단무기를 과신했다….”

김 장관에 이어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 역시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철저하게 반성하고, 군사 대비태세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통절한 자성과 각오의 얘기를 잘 들었다”며 “그런 자성과 각오가 신속하게 현실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최고 지휘관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군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군을 믿는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실제 발언은 박 대변인이 전달한 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다고 한다. 어깨에 찬 별의 숫자를 모두 합치면 215개나 되는 104명의 장성 앞에서 군을 아주 매섭게 질타했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내가 밖에는 절대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우리끼리만 있는 자리이니 몇 마디 하겠다. 절대 밖에 나가선 이야기하지 말라”면서 군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고 한다. 특히 천안함 침몰 직후의 늑장 보고, 잇따른 헬기 추락 등 군 기강 해이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이래서 되겠느냐”는 말을 연발했다고 한다.

특히 천안함 침몰 직후 군이 늑장 보고를 한 것을 지적하며 구제역 관련 보고보다도 못하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농민들이 자식같이 기르는 소나 돼지가 죽어도 나에게 10~20분이면 보고가 되는데, 우리 장병들이 탄 함정이 침몰했는데 (합참의장에게 49분 만에 보고될 정도로) 보고가 늦었다니 말이 되는 일이냐”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도 어느 한 곳에서 사고가 나면 10분 안에 총수에게 보고된다”는 등의 질책을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 주재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함께 국방회관에서 한식으로 오찬을 함께했다. 오찬에서 참석자들은 오렌지 주스로 건배를 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고려해 술은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는 당초 오찬 계획을 잡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군을 질책만 한 뒤 식사도 하지 않고 떠나면 군의 사기가 너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3일 오찬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글=서승욱·정용수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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