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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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프레드 앨퍼드 지음, 이만우 옮김, 황금가지, 1만5000원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는 인류 사회의 오래 된, 아니 영원한 질문이다. 그런데 신간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에서는 질문 형식을 ‘인간이 왜 악해지는가’혹은 ‘인간은 악을 언제 경험하는가’로 살짝 바꾼 후 색다른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두려움에 싸여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제는 ‘우리에게 악이 의미하는 것’(What Evil Means To Us, 1997). 저자에 따르면 악은 곧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다.
저자 찰스 프레드 앨퍼드(메릴랜드대 정부학 교수)는 정신분석 방법으로 사회현상과 정치문제를 연구해 온 정치학자. 악의 근원이 두려움이란 그의 흥미로운 결론은 14개월에 걸친 실증적 정신분석에서 나왔다.

그는 평범한 일반인과 교도소 재소자, 정신병 환자 등 68명을 직접 만나 21개의 질문을 던졌다. 피면담자들의 대답에 나타난 공통적 키워드가 바로 ‘두려움’. 구체적으로 일반인들은 패배·실연·따돌림·죽음에서 악을 떠올린 반면, 흉악범들은 존속 살해·강간·시체 유기 같은 범죄를 악이라고 여겼다.

저자는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깨닫고 포용하는 대신 두려움을 타인에게 떠넘기려 할 때 인간은 사악해진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신의 고통이나 외로움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비교적 경미한 악행은 물론 원한 관계도 없이 엽기적으로 살해하는 행각 등도 모두 두려움의 결과다.

나아가 저자는 “악을 낳는 충동은 결코 제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형제도는 인류 사회에서 악을 제거하는 근원적 수단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악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의 인류가 악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파괴적 충동의 완충지대를 보다 많이 생산해 내는 것”이다. 사회적 완충지대를 만드는 것은 문화의 힘이다.
저자가 볼 때,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악의 속성을 이해하고 포용하게 하는 다양한 문화상품을 통해 서로가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악과 함께 상생하는 최선의 길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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