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행 질 높이려다 중국 관광객 줄어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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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해 10월 4박5일 동안 한국을 여행한, 베이징에 사는 중국인 가오싱웨(高星月·27·여)는 기억이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그는 “서울에 있을 때는 자수정·인삼 쇼핑에 끌려다닌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숙소는 서울 시내가 아니라 경기도의 관광호텔이었다. 가오싱웨는 “여행사에 낸 돈은 2700위안(약 43만원)으로 많지 않지만 여행의 질이 나빠 한국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싸구려 서울 관광’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2월 ‘서울형 관광상품’을 내놓았다. 올해 176만 명의 중국 여행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4박5일 중 제주도(2박)에서의 일정을 뺀 서울에서의 여정은 서울시가 직접 기획했다. 한강 유람선, 난타 공연, 63빌딩 전망대 등 들러야 할 곳 10여 곳을 고르고, 쇼핑은 모두 합쳐 네 번으로 줄였다. 호텔은 서울 시내에 있는 1급 이상으로 못 박았다. 이 여행상품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는 올해 13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놓고 있다.

그러나 여행객 유치 실적은 부진하다. 지금까지 이 관광상품을 선택한 중국 여행객은 8개 팀 200여 명에 불과하다. 여행업계는 비싼 가격을 원인으로 꼽는다. 4박5일짜리 서울형 관광상품의 가격은 5000위안(약 80만원)이다. 중국 현지에서 팔리고 있는 한국 여행상품 가격의 두 배에 가깝다. 방문하는 곳의 절반 이상이 유료인 데다 숙박·식사의 질을 올렸기 때문이다. 장유재 모두투어인터내셔널 대표는 “저가 상품 위주의 여행 판도를 바꾸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손님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고 서울시가 욕심을 부렸다”고 말했다.

서울이 일본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뒤진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4박5일짜리 상품의 경우 서울형 관광상품과의 가격에 1000위안(약 16만원)을 보태면 된다. 일본은 올해를 ‘일본 방문의 해’로 정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항공료 유류세를 할인하고 여행사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임광호 서울교류중심(首爾交流中心) 실장은 “일본의 현(縣) 중에는 관광객 한 명당 10만원씩의 인센티브를 여행사에 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초부터 베이징(北京)·선양(瀋陽) 등 중국 10개 지역의 신문·잡지에 세 번씩 광고를 게재했으나 아직까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국 관광객의 국내 유치를 맡고 있는 김혜옥 한중상무중심(韓中商務中心) 부장은 “6~7년 전 부산이 중국에 TV 광고를 많이 해 부산에 오고 싶어 하는 중국인들이 크게 늘어났다”며 “서울형 상품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2개월간의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이달부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관광객을 유치하는 중국 현지의 여행사에 한 명당 10달러의 인센티브를 주고, 필수 관광 코스도 10여 곳에서 4곳으로 줄일 방침이다. 이해우 서울시 관광진흥담당관은 “이 상품을 선택한 관광객 중 96% 이상이 여행에 만족했다고 답한 만큼 앞으로 입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고 서울시의 이미지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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