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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왜 '조폭과의 전쟁'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조직폭력배(조폭)문제가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용호 게이트'가 등장하면서 드러난 조폭과 검찰의 연계 의혹, 권력과 정치권 주변에서 '형님, 아우'하며 서성이는 조폭의 은밀한 모습들이 대정부질문의 소재가 된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대로 "조직폭력배가 어느 정권 때보다 활개치며, 떼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가 우리 사회에 나돌고 있고,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나온 대로 '골프장.호텔에서 조직폭력배들로 인한 불안감과 불쾌한 경험'은 국민 사이에 퍼져 있다. '조폭 전성시대''조폭 신드롬''조폭정치'라는 말이 낯익은 용어가 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의 조폭은 1백99개파.4천1백여명. 지금의 조폭은 과거 칼이나 주먹, 나이트클럽이나 고급술집을 연상시키던 시절과는 딴판이다.

일부는 중소 건설회사를 꾸려가고 주식.벤처.사채 등 돈 되고 이권있는 곳에 어김없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이용호 게이트에는 국제PJ파를 한때 이끈 것으로 수사기관에서 파악하는 여운환씨가 버티고 있고, 지난해 '정현준 게이트'에는 과거 폭력 세계에 몸담았다는 오기준씨의 개입 의혹이 있다.

밤거리 유흥가에서 나온 조폭들은 이제 패거리 정치문화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합법을 가장해 경제현장의 그늘에서 거들먹거린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대선이 조폭 사회를 키우는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폭 전성시대라는 표현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간판으로 내건 현 정권으로선 기분 나쁘고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폭사회가 왜 이 정권 들어 성장했나"하는 논란이 번지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민심 이반(離反)의 한복판에는 속시원한 조폭 소탕이 없는 데 대한 불만도 있다.

최근 검찰과 경찰이 '조폭과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이용호 사건과 수뇌부 일부의 연루 의혹 탓에 대다수 국민은 시큰둥해한다. 도덕성.신뢰가 떨어진 공권력이 얼마만큼 조폭의 실태를 파악해 퇴출시키는 성과를 거둘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조폭과의 전쟁에 정권 차원의 의지를 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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