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 의학 프리즘] 최장수부부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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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국내 최장수 부부인 제주도 남제주군의 이춘관 할아버지(101)와 송을생 할머니(96)의 장수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골골거리면서 오래 살면 뭐하느냐' 는 독자들의 오해부터 풀고 싶다.

기자가 만난 이춘관 할아버지 부부는 놀라울만큼 정정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 없이 동네 어귀까지 걸어다닐 정도며 할머니는 의식이 명료해 수십년 전 시시콜콜한 것까지 죄다 기억해냈다. 치매 증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부부를 찾아낸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는 "1백세 이상 고령노인의 특징은 평생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갑자기 세상을 뜨는데 있다" 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장수비결을 애써 찾으려는 기자의 노력을 비웃듯 이들 부부의 생활은 평범 그 자체였다.

값비싼 보약도 먹은 바 없고 남다른 섭생법도 없었다. 오히려 할아버지는 건강에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를 아직까지 피우고 있지 아니한가.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 특별한 강박이나 구속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으니까 한껏 움직이고 먹을 수 있으니까 가리지 않고 먹었다고 한다.

최근까지 자녀의 도움없이 살아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할아버지가 98세, 할머니가 93세에 이를 때까지 스스로 밥을 짓고 빨래나 청소도 했다. 파출부는 언감생심이었다.

할아버지는 85세까지 고기잡이 배를 탔고 할머니는 환갑 넘어서까지 해녀 일을 했다. 노년에 자식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것이 관습인 제주에선 이것이 전혀 흉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안락한 노후가 오히려 죽음을 재촉한다는 것은 많은 장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일본 오키나와 등 세계적 장수촌은 공통적으로 노인들이 직접 밭을 갈고 물고기를 잡는다.

진정 부모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다면 이들에게서 일할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홍혜걸 기자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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