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호재에도 채권시장 살얼음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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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채권시장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금리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매수세는 조심스럽다. 지난달 28일 채권시장에는 각종 호재가 터져나와 국고채 3년물은 사상 처음으로 4.4%대에서 마감했고, 국고채 5년물도 4%대에 안착했다.

최근 미국이 또 다시 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면서 미 채권수익률이 사상 최저치로 하락한데다 국내 소비자 물가도 전년 동기 대비 3.2% 상승에 그쳐 채권시장에 힘을 불어넣었다.

국정감사에서 진념 부총리가 "올 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 이라며 "콜금리 인하는 경기부양의 효과가 크다" 고 발언한 것도 호재였다.

한누리증권의 한 중개인은 "투자자들은 단기물 쪽에 관심이 많은데 물건을 구할 수 없자 일부 중장기 채권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며 채권시장의 활황을 예고했다.

그러나 채권딜러들은 금리가 바닥권에 접근하면서 언제 금리가 반등세로 돌아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지 몰라 몸을 사리고 있다. 한국.미국의 경기 지표가 나쁘게 나오고 있지만 보복전쟁 발발 가능성과 금융당국의 채권시장 투명화 방안이 딜러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에 국채를 발행할 계획" 이라는 정부 방침도 채권시장에는 악재다.

채권 딜러들은 "한국은행이 최근 콜금리를 0.5%포인트 낮췄지만 시중 금리는 0.25%포인트 내리는 정도에 그쳤다" 며 "전쟁 가능성과 채권시장 안팎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채권거래가 부담스러운 상황" 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채권시장 투명화 방안은 채권 브로커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지금까지 채권시장은 유명무실한 장내시장과 증권사 브로커를 통한 장외시장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이 방안에 따라 연말까지 주요 채권상품에 대해 장내거래가 의무화되면 장외시장의 거래 규모는 줄어들고 채권시장의 중심도 장내 시장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동안 장외거래에선 1백억원 규모의 채권을 거래할 때마다 1백만원의 수수료를 받았지만 장내거래의 수수료는 1백억원당 5만원에 불과하다. 결국 장외거래에서 거래수수료를 챙겨온 증권사 브로커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편 올 들어 하루 평균 채권거래대금은 5조6천억원으로 외환위기 전인 1997년(하루평균 4천억원)의 14배로 커졌으며, 채권 시가평가제 도입으로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는 자전거래도 급감했다.

이에 따라 채권 수수료 수입이 급증하자 채권 브로커들은 회사와 일정 비율로 나눠갖는 관행이 자리잡았으며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과도한 접대 등으로 말썽을 빚기도 했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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