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DJ 국정종반의 장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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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년 대통령 단임제의 마지막 1년을 둘러싼 기억은 씁쓸하다.

국정 초점과 개혁 목표가 혼란스런 가운데 통치권자의 신임이 쏠리고, 권력 핵심기관이 흔들렸던 모습은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YS)정권의 임기 종반 때의 장면들이다. 김대중(金大中.DJ)정권도 그런 헝클어짐과 고단함을 맛보고 있다.

*** 대통령 신임의 독점 현상

盧정권 후기의 무기력함은 국정의 초점을 명쾌하게 압축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는 3당 합당의 바탕이었던 내각제를 쉽게 버리지 못한 탓에 혼란을 자초했다. YS의 교묘한 물타기에 말려 내각제 개헌은 적기(適機)를 놓쳤는데도 1년 이상 매달렸다. 중국 고사처럼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鷄肋)이 돼버린 내각제에 대한 미련은 국정 전체를 헝클어놓았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는 이미 피곤한 상황에 들어가 있다.

이 문제가 국정순위의 제일 앞쪽에 본격적으로 놓인 것은 지난해 12월 DJ의 노벨평화상 수상부터다.

올 들어 4월.6월, 그리고 9월설(說)등 방문 시점이 늦춰지면서 생겨난 "믿기 힘든 金위원장을 서울에 데려오려고 정부가 퍼주기만 한다" 는 여론의 의심은 두텁다.

金대통령이 여기에 매달려 민생.경제문제, 부패척결, 개혁 마무리라는 평범하면서도 절실한 과제에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준 것은 결정적 손실이다.

지금 金위원장이 서울에 와도 국민적 박수는 받기 힘들고, 국정과 민심을 장악하는 파괴력과 신선함은 기대 이하일 것이다. 답방문제는 또다른 계륵이 될 처지에 놓여 있다.

DJ정권의 국정을 어렵게 하는 대목은 권력 운영의 3각축이 흔들리는 점에도 있다.

5년 단임제에서 국회의원(4년)과의 임기.선거 주기의 차이로 생기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검찰과 국세청의 역할은 늘 새로운 주목대상이다.

검찰권과 조세권은 盧.YS정권에서 정책 추진력과 권력 관리의 주요한 수단이었고, DJ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다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 원군으로 시민단체를 끌어들였다.

이런 3각축이 제대로 가동하려면 끊임없는 도덕성의 단련이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이 누구만 총애한다' 는 신임의 독점 현상이 스며들면 안된다.

그러나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이나 최근까지 국세청을 이끌었던 안정남(安正男)전 건설교통부장관에게는 이와 관련한 여러 논란이 겹쳐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이끌며 '애국가 4절까지 애창, 마니산 백배(百拜)' 심경을 외쳤던 安전장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DJ개혁의 하나인 조세정의를 한심하게 만들었다.

'이용호 게이트' 에 동생이 걸려 있는 愼총장 주변에는 신임의 편애가 드러난다.

대검차장 시절 국회의 탄핵소추 변칙 처리→김정길 법무장관 퇴진→안동수 법무장관 졸속 임명파동은 愼총장을 위한 통치 차원의 유난스런 배려였다.

요즘 愼총장에 대한 청와대와 민주당의 해명과 보호는 낯익은 모습이나, 민심과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의 신임이 폭이 좁아지면 국정 기반은 약화된다. 임기 종반부에 신뢰의 독점은 국정을 뒷받침하는 여권 내 많은 사람들의 부패척결 동기와 개혁 마무리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

청와대 박지원(朴智元)정책기획수석의 약진도 그런 논란 속에 있다. 레임덕(권력누수)이 야당 공세보다 내부 이탈에서 온다는 것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경험이다.

*** 내부 이탈서 오는 레임덕

국정 흐름을 제대로 돌리는 반전(反轉)카드는 이런 문제들을 정리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답방문제로 인한 국정의 병목 현상을 풀어줘야 한다. 金대통령이 "답방에 연연하지 않는다" 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목소리를 국민들은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통치의 신임을 적절히 나눠줘야 하며 愼총장한테서 느껴지는 그런 '과(過)보호' 인

상은 걷어내야 한다. 이제라도 국정운영의 열정과 우선순위를 다시 짜 국민들과 마주해야 한다.

박보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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