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며느리 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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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탈리아의 의사 베르나르디노 라마치니는 1713년에 펴낸 최초의 직업병 개론서 『직업병에 대하여』에서 "직업이 병을 만든다" 는 명언을 남겼다.

지금도 산업보건.산업의학계에선 이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인류는 작업환경 개선과 보호장비 개발 등 직업병을 막으려는 다양한 과학적.사회적 방법을 개발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쉽게 예방할 수 없음은 물론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직업병이 있다. 스트레스다.

인간의 정신과 몸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어 심한 스트레스는 신체에 이상을 일으킨다. 의학에서는 이를 정신신체장애(psychosomatic disorder)라고 부른다.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 중 가장 흔한 것이 두통.고혈압.위장질환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골치 아프다" "속이 상한다" 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주가하락, 공직자의 석연치 않은 재산 축적이나 비리 의혹 등의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이런 탄식이 많아진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는 추석 등 명절을 앞둔 기혼 여성들에게 정신신체장애가 흔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의사들에 따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쓰린 증상이 가장 흔하며 불면증.두통도 나타난다.

심하면 눈앞이 잠시 희미해지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지기도 한다. 전형적인 스트레스 증상이다.

명절은 가부장제가 가장 극성인 시기다. 제사나 가족모임은 대개 남자 위주로 이뤄진다. 결혼한 여성은 으레 남편의 집에서 시댁 식구들과 하루 이틀을 보내야 한다. 핵가족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여성에겐 대단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1992년 이를 기사로 다루면서 '며느리 증후군' 이라는 이름을 붙여봤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증세는 나이가 적을수록 심하며 직장인보다 전업주부에서 더 심각하다. 고부간의 사이가 좋고 나쁜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중 가장 극단적인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덮는 전통의상 부르카를 입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다.

원리주의는 종교생활을 비롯한 모든 삶의 방식을 1천3백여년 전의 초기 이슬람 시절로 되돌리는 게 목표다. 18세기 초 무하마드 이븐 알 와하브라는 이슬람학자가 주창한 와하비 운동이 기원이다.

21세기 한국 여성에게 명절이 '부르카' 가 되어선 안될 일이다.

채인택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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