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영빈관, 단순한 행사장이 될 수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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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장동건과 고소영이 다음 달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세기의 결혼이니 뭐니 해서 말도 많다. 레저 기자들에게도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결혼식이 열리는 장소 때문이다. 신라호텔은 이른바 국빈호텔이다.

신라호텔을 국빈호텔이라 부르는 건, 헛된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여기엔 나름의 역사가 있다. 이야기는 동란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막 나라 꼴을 갖추던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산 자락에 외국인 VIP 전용 숙소를 지으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름하여 영빈관. 겨우 나라 틀을 세워놓자, 외국에서 귀빈이 방한해도 먹이고 재울 곳이 마땅찮은 현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나 영빈관은 67년이 돼서야 문을 연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반정부 시위가 들끓었고 대통령이 쫓겨났고 쿠데타가 터졌다.

개관을 기념해 박정희 대통령은 영빈관 오른쪽 기슭의 바위에 휘호를 남긴다. 한자로 쓴 ‘민족중흥’이다. 외국 귀빈을 모시는 숙소에 어울리는 글귀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위에 새겨진 네 글자는 지금도 또렷하다.

영빈관은 73년 신라호텔 소유가 된다. 국제 수준의 호텔을 만들어 달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이 있었다. 신라호텔이 영빈관을 맡기까지 5년간, 여러 정부 기관이 돌아가며 영빈관을 관리한다. 놀라운 건, 72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담당 부처다. 당시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영빈관을 운영한다.

청와대에 영빈관이 들어선 78년 12월까지, 신라호텔 영빈관은 청와대 영빈관의 역할을 대신한다. 청와대에 영빈관이 생긴 뒤에도 신라호텔은 영빈관 현판을 고수한다. 그러니까 국빈호텔이란 자부심은 한 세대 전에 생긴 것이다.

마침 영빈관이 최근 새 모습으로 단장했다. 단절돼 있던 연회실을 유리문으로 이어 700명이 들어가는 대연회장으로 변신했다. 리모델링 이후 첫 손님이 장동건-고소영 커플이다. 영빈관은 이 스타 커플을 취재하려는 취재진을 위한 프레스룸으로 쓰일 예정이란다.

남산 기슭 웃자란 호텔 빌딩 곁에 다소곳이 들어앉아 있는 한옥 영빈관. 전통과 현대가 어울린 서울을 상징하는 모습으로도 비치는 건물이다. 이 낮은 기와 아래 여느 특급호텔은 넘볼 수 없는 품위의 역사가 배어 있다.

요즘 두 스타의 결혼을 앞두고 인터넷이 시끄럽다. 이들 결혼식을 유치한 신라호텔이 이 사실을 자랑하는 과정에서 얕은 장삿속을 보인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호텔의 영업 방식이 어떻든, 상관할 바는 아니다. 다만, 영빈관의 품격은 변치 않기를 바란다. 어쨌든 영빈관은 우리 근대화의 역사와 영욕을 함께해온, 그 존재 자체로 우리 현대사를 증언하는 ‘문화재’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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