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의 현장] 출구전략에 앞서 구조조정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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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거시경제 지표와 상장 기업들의 실적치를 보면 한국 경제가 외견상 정상 체력을 회복한 게 분명하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7.8%로 치솟은 가운데 한국은행은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5.2%로 높였다. 5%대의 경제성장에 2%의 기준금리는 ‘과잉 영양공급’이다.

그럼에도 환자를 퇴원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직 치유하지 못한 환부 때문이다. 이는 누구보다 정부가 잘 안다. 저축은행과 부실 건설사, 지방의 중소형 조선사 등이 대표적인 환부다. 가계부채 문제도 함께 거론되곤 하지만 성격은 다르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경제체질이 허약해졌다는 이유로 기업 구조조정을 미뤘다. 더구나 서민·지방경제 살리기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 뒤로는 아예 수술을 포기하다시피 한 모습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이 문제와 관련해 요즘 즐겨 쓰는 말이 “연착륙”이다. 기업들이 돈을 벌어 부실을 털어낼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것이다.

과연 성공 가능한 해법일까? 저축은행 문제를 들여다 보자. 정부가 시간을 주고 있지만 저축은행들의 부실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연체율은 11%나 된다. 시장에선 이 수치마저 불신한다. 실제 20~30%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의 기업 대출이 지난해 20%나 늘어난 데 주목한다. 이는 부실을 눈가림하기 위해 건설사 등의 기존 대출에 이자만큼의 금액을 얹어 장부상 새 대출로 꾸미는 ‘에버그린 론’ 때문이란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축은행들은 고금리의 후순위채 발행과 예금 유치로 자산을 계속 부풀리고 있다. 이 돈이 부실 돌려막기에 쓰인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도덕적 해이에 따른 부실 확대의 시나리오다. 결국 국민 세금 투입의 수순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는 일단 PF 사업장을 전부 조사한 뒤 6월 말까지 대책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꼭 전수조사를 해봐야 아는 문제일까. 지방선거를 의식해 정한 일정은 아닌지 묻고 싶다. 출구전략 논의에 앞서 기업 구조조정의 숙제부터 서둘러 마쳐야 할 때다. 수술을 이겨낼 만큼 우리 경제의 체질은 좋아졌다. 

김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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