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을 축하한다. 팬들은 이세돌 9단이 연전연승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진가를 만천하에 과시했다고 말한다. 이제 휴직사태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어느 정도 씻은 것인가. 이세돌 9단을 가리켜 ‘바둑이 생긴 이래 가장 전투가 강한 기사’라고 말하는 사람마저 나왔다.
“비행기 태우는 얘기인지 잘 알지만 우승은 매우 기쁘다. 걱정했는데 명예를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6개월 휴직을 끝내고 복귀한 후 처음 바둑판 앞에 앉았을 때의 심정이 궁금하다(이세돌의 첫 대국은 1월 16일 비씨카드배 64강전 아마추어 연구생 이주형과의 대국이었고 난전 끝에 3집 반을 이겼다).
“복귀전 부담이 너무 커 전날 밤잠마저 설쳤다. 차라리 이름 난 강자이거나 최소한 프로를 만났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휴직 때 바둑을 완전히 끊은 것이 아닌데도 바둑판이 매우 생소해 보였다. 고전 끝에 힘들게 이겼다.”
-그런데도 이후 24연승을 거뒀다.
“처음엔 6개월 정도 회복 기간을 갖고 그다음부터 잘 해보자 생각했다. 솔직히 복귀 직후엔 마음도 불안했고 바둑 내용도 불안했다. 그러나 쿵제·박영훈 같은 강자들을 이기며 점차 감각을 되찾았다.”
-연승의 원동력이 특유의 집중력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세돌 9단의 집중력은 원래 유명하지만 지금은 휴직 전보다 훨씬 무서워졌다고 한다.
트로피와 3억원의 우승상금을 시상한 후 장형덕 사장과 이세돌 9단(오른쪽)이 비씨카드 기념촬영을 했다. 준우승은 1억원. 이세돌 9단은 27일 끝난 제2회 비씨카드배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 9단을 3대0으로 꺾었다. [한국기원 제공]
-성적을 보면 6개월 휴직 때 바둑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중국리그 몇 판 두었고 도장에 나가 (아이들과) 바둑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바둑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 10여 년 프로 생활 동안 바둑을 떠난 적은 처음이다. 그건 한편으로 굉장한 고통이었다.”(이세돌의 자진 복귀는 힘든 결정이었는데 그 이면에 바둑을 못 두는 고통이 있었다.)
-이번 창하오 9단과의 결승전 얘기를 해보자. 3대0으로 이겼는데 전투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찬사가 잇따르고 있다.
“바둑 내용에 만족하고 있다.”
-그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휴직 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온다. 프로들 사이에선 이건 새로운 바둑이고 바둑의 또 다른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이번 결승전에서 이세돌의 수법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추상적이어서 해설자들이 감탄사를 연발할 뿐 다음 수를 거의 맞히지 못하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이세돌 9단은 처음엔 겸손하게 물러섰으나 곧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정상을 오래 지키는) 이창호 9단이 존경스럽고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둑이라는 것은 창의적 발상이 중요하며 그게 막혀 천편일률적인 생각을 하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퇴보하게 된다. 휴직 때 바둑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제한이 풀린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발상의 자유로움을 가져다 준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자유롭다고 느끼고 있다. 그게 수에 나타난다.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그 얘기는 바둑을 공부하는 후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9단의 24연승은 엄청난 화제다. 그 연승을 어디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가.
“연승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좋은 바둑을 두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많이 이기면 좋겠지만 속기전이 많아 어차피 운이 따라 줘야 하는 것 아닌가.”
-11월 아시안 게임에서 이세돌 9단은 이창호 9단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바둑을 두게 된다. 우리가 금메달을 따낼 수 있을까.
“준비가 중요하다. 준비를 잘 해서 꼭 우승하고 싶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