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의 거리문화 읽기] 하늘과 등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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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여름과 가을 사이를 잇는 좁은 다리 같은 9월의 일요일. 햇볕이 아직 따갑기는 하지만 바람이 불어 서늘한 도시를 걷는다. 충무로로 일을 보러 갔다가 명동을 거쳐 종로쪽까지 와버렸다.

학생들이 영화를 찍고 있는 명동 입구 지하도를 건너자 갑자기 거리가 한가해진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생각나는 분위기다. 네모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서 있는 빌딩 사이에 정자와 의자가 있다.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이 흔들리고 정자 아래 나무의자에 누군가 누워 있다. 노숙자는 아닌 것같은데 편하게 누워 자는 자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정자로 가 멍하니 앉아 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베개삼아 눕자 하늘이 보인다. 등나무 덩굴을 얹어놓은 정자 지붕 틈새로 보이는 하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을 보지 않는다. 태풍이 지나가거나, 갑자기 날이 흐려져 소나기라도 쏟아지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

도시는 바라보기 위해 만들어진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살아가기 위한 장소일 뿐. 누워서 보는 하늘의 구름과 등나무 덩굴 잎들이 딴 세상을 이루고 있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왜 그런지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바람이 손에 쥐일 것처럼 불어오고 시간은 완전히 멈춘 것 같다. 전화기를 꺼버리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한참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자꾸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받던 비행기가 머리 속을 지나간다.

눈을 뜨면 다시 하늘과 구름과 등나무가 보인다. 비행기는 없다. 완벽하다. 완벽하므로 불안하다. 불안해서 옆으로 돌아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새털구름처럼 가볍게 지나간다. 아버지가 어린딸의 손을 잡고 지나간다. 외국인 노동자의 검은 얼굴이 지나간다. 전화기를 귀에 댄 젊은 여자가 지나간다. 갑자기 버스가 눈앞을 가린다. 다시 바로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빌딩들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현대도시란 근본적으로 원근법적 질서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고정된, 흔들리지 않는 단일한 시점에 의해 세계를 바라보는 원근법. 물론 그 고정된 단일 시점은 허구지만 허구가 이처럼 현실이 되면 원래 허구라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도시는 환상이지만 그 환상 속을 걸을 때, 그 속에 누워있을 때는 결코 환상이 아니다. 눈을 들어 맞은편에 누워있는 사람을 본다. 그는 확실히 프로다.

나처럼 별 쓸모도 없는 도시.환상.허구.원근법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고 잠들어 있다. 저 잠이 부럽다. 초가을 일요일, 도심 의자에 편안히 누워 잘 수 있다는 것.

눕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잠은 들지 못하는 나는 결국 일어서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구름과 등나무를 잊어버릴 것이다. 마치 아무 것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 강홍구는

▶1956년 전남 신안 출생

▶목포교대.홍익대 서양화과.동 대학원 졸업

▶인하대.경원대 강사

▶저서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 1, 2』 『앤디 워홀』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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