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恨과 증오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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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당정개편 인사과정과 그 후유증을 지켜보는 시중에서의 화두는 현 정부의 나머지 일년 반이 순탄할 수 있겠느냐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인가. 많은 사람들은 DJ정부 출범 후 계속된 국내정치 불안정의 일차적 원인을 집권당의 원내 소수의석 때문이라 해왔다.

*** 정치 지도층간 대립·반목

일리는 있겠으나, 비교정치분석을 깊이 해보면 충분한 답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 정치지향을 당위시하는 현실 속에서 이와 모순되는 정치지도자들의 내면세계와 관련된 '무슨 문제' 가 도사려온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만일 정치지도자의 내면세계에 뿌리박힌 '한(恨)과 증오' 같은 무의식(잠재의식)이 '한국적 민주정치' 를 움직여온 실질적 동력원의 일부여서 지금의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면 이는 그냥 눈감아 버릴 사안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라스웰 교수가 말한 '사적(私的)동기의 공적(公的)전이' 에 따라 정치에 입문했을 것이기에 속내와 대의명분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 정치권 인사는 예외 없이 '민주화 투쟁' 경력 혹은 '민주주의 수호의지' 를 내세우고 있음이다. 한편 우리의 시민영역도 선진민주국가형 정치문화 수준으로 급성장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안정적 민주정치를 위한 구조적 토양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치파행과 불안정의 발생원인은 정치지도층의 문화심리적 영역에 관련된 정치행태(political behavior)에 책임이 있지 않느냐 하는 가설을 가능케 한다.

최근 민주주의 이행과정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에서는 '민주화의 투사' 라 불려온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새로운 정치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날 비민주주의체제 아래에서 온갖 탄압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주주의 이상' 에 모든 것을 걸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란 독재(혹은 권위주의)에 대한 추상적인 '안티 테제(반론체)' 였지 실생활 그 자체일 수가 없었다.

일상에서의 사고와 행동은 오히려 구조적 폭력 때문에 개인.지역.집단차원에서 생긴 '恨과 증오' 를 갖고 '선(友)과 악(敵)' 이라는 이분론 속에서 비밀주의와 결사체 중심의 생존논리를 좇았다.

그래서 이들이 신생 민주주의체제의 리더십을 맡게 되었을 때 관용과 타협의 정신을 요구하는 다원주의 민주정치세계에 적합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동구나 남미국가에서의 국내정치가 끊임없는 엘리트간의 대립과 사회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는 더욱 분열돼 가고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한편 최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지도자 중에서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 정도가 계속 칭송받는 이유가 '恨과 증오' 를 떨쳐버렸기 때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 이후 국정운영(제2건국론과 개혁정치 및 대북 햇볕정책 등)에 있어서 국운을 거는 듯한 '전투적 자세' 를 계속 보여왔다.

문제는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결손이 낳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함에 따른 '통합 위기(integration crisis)' 의 발생이다. 설령 야당의 정략적 의도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설득과 타협의 민주주의 덕목실천은 여권의 의무임을 몰각했다.

그 결과는 '국가정체성의 수호' 문제를 정치쟁점의 대상으로까지 끌어올렸고, 공동정부의 붕괴를 자초했으며, DJ대북정책 총체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까지 스스로 떨어뜨려 놓고 있다.

*** 설득과 타협으로 나가야

우리의 전통 무속에 여러 종류의 한풀이가 있다. 일종의 화해와 관용의 기복미학이다.

'恨과 증오' 의 정치가 우리 당대의 문제라면 한풀이의 장(場)을 거쳤으면 어떠했을까. 사실상 지난 비민주주의체제 아래에서 득을 보아온 사람들은 야당에 많다.

이들도 이제는 민주주의 수호를 다짐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안정과 나라발전을 위해서, 여권지도자와 당정이 화해와 발전을 위한 한풀이를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할 역설적 위치에 야당이 서 있었던 것은 아닌가.

여권 정치지도자들의 '恨과 증오' 가 극복될 전망이 불투명한 채, 앞으로 야당까지 대결의 정치를 펴가려 한다면 우리 모두가 공멸로 치닫게 될 것임을 깊게 인식해야 할 때다.

金東成(중앙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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