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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암 대해부 - 1부 달라지는 암 지도<상> 여성 암 판도가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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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출산 기피 여파 … 자궁경부암 크게 줄고 난소암 늘어 

① 발생률 연 6%↑‘대장암 쓰나미’

주부 김은숙(57·서울 서초동)씨는 지난해 12월 대변 보기가 힘들고 변에 피가 섞여 나왔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혈변이 멈추지 않자 동네 병원을 찾았다가 건국대병원으로 옮겨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2월 중순 종양 부위를 20㎝가량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가족 중 대장암에 걸린 사람이 없고 혈변 외에 특별한 증상이 없었는데 대장암에 걸려 놀랐어요.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아요. 체중(60㎏)이 약간 많이 나가고 고기를 좋아하는데 그게 문제였을까요.”

김씨는 자신의 병을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나마 빨리 병원을 찾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은 위암이다. 하지만 위암이 2005년을 정점으로 줄고 대장암은 꾸준히 증가하면서 1위 자리를 대장암에 내줄 날이 멀지 않았다. 국립암센터 암등록 자료에 따르면 1999~2007년 위암 환자(인구 분포를 고려한 발생률)는 0.6% 줄었지만 대장암은 6.4% 증가했다. 대항병원 대장암센터 이두석 부장은 “식습관이 서구식으로 변하고 있는 데다 일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이들이 회식 자리에서 육류와 술을 많이 먹는 것이 대장암 증가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여성 대장암 신규 환자가 99년 4404명에서 2007년 8316명으로 8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여성 위암은 7316명에서 8517명으로 약간 증가했다. 두 암의 신규 환자 차이가 거의 없어진 것이다. 특히 2007년 65세 이상 여성 대장암 신규 환자(4376명)는 위암(4352명)을 제치고 여성 암 1위로 올라섰다.


② 출산 안 한 여성, 자궁내막암 급증

주부 전모(60·충남 부여군)씨는 2008년 8월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항상 아랫배가 더부룩한 데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가스가 차고 식욕이 없었다. 소화불량 정도로 여기다 가족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고 난소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니 암세포가 간까지 퍼져 있었다. 전씨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 난소암에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저출산이 여성들의 암 지도를 바꾸고 있다. 자궁경부(입구)암은 크게 주는 대신 난소암은 늘어난다. 국립암센터 암등록 자료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99년 4443명에서 2007년 3616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난소암은 1332명에서 1838명으로 늘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자궁경부에 자극이 많을수록 암이 많이 발생하는데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자궁경부암 발생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김홍배 교수는 “여성이 배란(생리)을 많이 할수록 난소암 위험이 커지는데, 불임여성이 아기를 낳은 여성에 비해 난소암에 걸릴 위험이 2.5배 높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조기검진이 늘고 위생상태가 좋아지면서 자궁경부암이 줄었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김병기 교수는 “서구식 고지방·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여성호르몬 생성이 활발해지고, 초경 시기가 빨라지면서 배란기간이 늘어나 난소암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자궁내막·유방암도 증가하고 있다. 2007년 자궁내막암 환자는 99년에 비해 84%, 유방암은 104% 증가했다. 자궁내막암은 비만이거나,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 걸리기 쉬운 병이다. 국립암센터 김주영 자궁암센터장은 “비만이 심하거나 아기를 낳은 경험이 없으면 자궁내막 조직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자극에 쉽게 노출되며 자궁내막암의 발생률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③‘검진의 힘’ 여성암 1위 갑상샘암

여성 갑상샘암 신규 환자는 2007년 1만8019명으로 99년의 6.4배로 증가했다. 2004년부터 여성암 1위가 됐다.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조기검진이다. 없던 암이 새로 생긴 게 아니라 모르던 것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김은경 교수는 “초음파-세포검사 기술이 우수하고 비용이 저렴해 암세포가 작을 때도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조기 수술에 대한 논란이 많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는 “조기 진단과 조기 수술이 잘못된 건지 냉정하게 말하기 어렵다. 어느 누구도 수술을 하지 말라고 권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 내분비내과 조보연 교수가 갑상샘암 환자 4626명을 조사한 결과 20년 후 사망률이 9.6%로 미국이나 유럽(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5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김영미(56·여·가명)씨는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정기검진을 그만뒀다가 암세포가 폐와 늑막에 전이됐고 10개월 뒤 숨졌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박도준 교수는 “한국인은 갑상샘암 재발률이 서구인보다 30~40% 높다”고 밝혔다.

④ 폐암, 25년 만에 여성 사망률 1위

전통적으로 폐암은 남성 흡연자의 병이었다.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성인 남성 흡연율이 뚝 떨어지면서 연령별 인구구조를 고려한 폐암 환자(인구 10만 명당)는 99년 51.9명에서 2007년 48.1명으로 줄었다. 반면 여성은 12.9명에서 13.7명으로 늘었다. 국립암센터 분석에 따르면 2008년 폐암이 여성의 암 사망률 1위로 올라섰다. 25년 동안 1위였던 위암과 자리를 바꿨다. 정부의 흡연율 통계를 보면 여성도 남성처럼 줄고 있다. 그런데도 폐암이 여성을 옥죄는 이유는 뭘까. 주부 이경숙(56·가명)씨는 평생 담배를 입에 대본 적이 없다. 지난해 여름 가슴이 뜨끔거려 병원을 찾았다. 가슴 X선 검사에서 늑막에 물이 차 있었고 폐암 세포가 발견됐다. 폐암 4기였다. 이씨는 항암치료를 받다 6개월 만에 숨졌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김호중 교수는 “여성 폐암 환자 중 흡연자는 열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며 “간접 흡연, 조리 때 발생하는 연기, 대기 오염 등이 암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정책사회선임기자(팀장), 김정수·황운하·이주연 기자,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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