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도 못하고 어떡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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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우리 아들… 돌아오지도 못하고 어떡해….”

천안함 전사자 46명 가운데 시신을 찾지 못한 6명 중 한 명인 장진선 중사의 어머니는 25일 평택 2함대 사령부 내 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영정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자 가족들이 부축해 가족석으로 옮겼다. 장 중사의 어머니는 전날 밤부터 계속해 통곡을 하느라 상복도 차려입지 못했다. 거듭된 위로에도 오열하며 이성을 찾지 못하자 가족들은 그를 분향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24일 함수 인양과 함께 실종자 수색작업은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중단됐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은 박성균 중사였다. 이창기 준위, 최한권 원사, 박경수 상사, 장진선 중사, 강태민 상병, 정태준 일병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특히 박경수 상사는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 마지막까지 생사여부가 불투명하다가 극적으로 살아돌아온 적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들의 가족들은 시신을 찾은 가족들을 부러워하는 기막힌 현실에 탄식하며 합동분향소에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었다.

분향소 내 이창기 준위의 가족석에는 10여 명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른 가족들이 우는 모습만 바라보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최한권 원사의 가족들도 앞만 주시하다 친척이 다가와 최 원사 어머니의 어깨를 어루만지자 ‘불쌍해서 어떡해’하는 통곡이 터져나왔다. 박경수 상사의 어머니는 “아직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조용히 흐느꼈다. 강태민 상병의 아버지는 “물에 오래 있을수록 찾기 어렵지 않겠냐”며 “28일 화장할 때 그 녀석이 아르바이트해서 마련한 게임기, MP3 다 넣어서 함께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미귀환 장병 6명 중 박경수 상사는 제2 연평해전 때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도 부상 사실을 모른 채 전투에 임했던 ‘참군인’이었다.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2008년 가족의 격려로 다시 배에 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딸 하나를 둔 박 상사는 이번 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결혼식을 할 예정이었다.

천안함 부사관 가운데 가장 계급이 높은 이창기 준위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후배들의 롤모델이었던 최한권 원사, 천안함의 가수 장진선 중사, 배를 사랑한 강태민 상병, 사고 보름 전 100일 휴가를 나왔던 정태준 일병도 모두 천안함의 영웅이었다.

박성우·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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