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출전기사들 컨디션 조절 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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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삼성화재배는 계룡산 자락에 있는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시작됐다. 호텔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다른 세계대회와는 영 다른 진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에도 소소회(笑笑會)의 젊은 프로기사 30명이 먼저 나타났다. 그들은 매년 이맘 때면 이곳 연수원에서 바둑도 두고 축구.족구 등으로 신체를 단련한다. 대회 중엔 기록과 연구를 도맡는다. 지난해 선수로 이곳에 왔던 강지성 4단과 이용수 2단은 올해는 기록자이고 지난해 기록자였던 박승현 2단과 박정상2단은 올해는 선수가 됐다.

TV와 인터넷 중계팀, 진행팀 등이 장비를 산더미처럼 싣고 몰려들고 나면 대회의 주인공인 세계 32강이 차례로 나타난다.

숙소를 배정받고 선수들은 셀프 서비스로 끼니를 해결한다. 중국의 마샤오춘(馬曉春)9단은 이게 불만이었다.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고를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싫었다. 꼭두 새벽에 기상 음악이 울려퍼져 잠을 설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기사들은 숲속에 자리잡은 이곳의 적요와 신선한 공기를 좋아한다. 조치훈 9단은 잔디밭에서의 맥주 한잔을, 이창호 9단은 산책을 즐긴다.

32강전은 8월 29일 열렸다. 그 전날의 컨디션 조절 방법은 다양했다. 조치훈 9단.서봉수 9단.왕밍완(王銘琬) 9단.유시훈 7단 등은 바로 옆에 있는 유성CC에서 골프를 했다(공교롭게도 이들은 첫판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창호 9단과 양재호 9단은 탁구, 유창혁 9단은 헬스, 중국의 1인자 창하오(常昊) 9단은 수영을 했고, 중국의 신예최강 구리(古力) 5단은 소소회와 어울려 축구를 했다.

29일의 32강전엔 한국 16명, 중국과 일본 각 8명이 출전하여 한국 8명, 중국6명, 일본 2명이 승리했다. 승률은 정예부대를 총 출동시킨 중국이 가장 높았다. 목진석 6단은 중국리그에서 구리5단과 같은 충칭(重慶)팀 소속인데 첫판에 맞붙어 그만 지고 말았다. 그는 류징(劉菁) 8단에게 패배한 안조영 6단과 함께 아무도 없는 대국장에서 밤늦도록 복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홍일점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의 남편인 장주주(江鑄久) 9단은 검토실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부인을 응원했고 바둑을 모르는 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씨도 온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있었다.

16강전이 끝난 8월 31일 밤, 치욕의 전멸을 당한 일본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8강전 추첨에서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이 맞붙자 "아!"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숙명의 재대결에 대한 기대와 누군가 탈락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뒤섞인 탄성이었다.

구리 5단을 이기며 누구보다 잘 싸운 17세의 박정상2단은 강적 마샤오춘 9단을 만났고 기적같은 연승을 이어온 고려대 재학생 안달훈 4단은 조훈현이란 호랑이를 만났다. 이 고비만 넘는다면 그들은 훌쩍 클 것이다. 세계대회에 유달리 강한 집념을 드러내고 있는 芮9단은 창하오 9단이 상대인데 과연 이판은 또 어찌 될까.

8강전은 10월 10, 11일 부산대에서 열린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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