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명창 지화자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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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창문을 닫아도 스며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 (창부타령)

경기민요의 대표곡인 '창부타령' 을 감칠맛나게 불렀던 명창 지화자(池花子)씨가 1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59세.

池씨는 묵계월.이은주(생존).안비취.김옥신(타계)씨 등을 잇는 경기민요 2세대로 주목받았던 명창. 국악계에선 池씨의 타계 소식을 듣고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1일 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빈소에 들렀던 고인의 스승인 묵계월(81.인간문화재 57호)씨는 "국악계를 이끌어갈 사람이 너무 빨리 사망했다. 내가 먼저 갔어야 하는데…" 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池씨의 제자인 고수자(52)씨는 "청아하면서도 뼛속 깊이 파고드는 힘있는 음색이 독보적" 이라며 스승을 회고했다.

경기도 시흥시 군자면에서 태어난 池씨는 1950년 청구고전상업학원을 1회로 졸업하고 국악계에 입문했으며, 남편과 사별한 뒤에는 딸 한연희(35)씨와 같이 지내왔다.

池씨의 가장 큰 공적으로 국악의 대중화를 들 수 있다. 우리 것이면서도 가장 홀대받는 국악의 보급을 위해 일반 공연은 물론 '전국노래자랑' '국악한마당' 같은 TV 프로그램과 전국 장사씨름대회 등에 단골 출연하는 열정을 보였다.

중앙대 박범훈(전 국립국악관현악단장)부총장은 "일반적으로 경기민요는 곱고 예쁘게 부르는 게 특징이지만 고인은 굵고 텁텁한 목소리로 친근감 있는 노래를 들려줬다" 고 애석해했다.

안숙선 국립창극단장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깊고 그윽한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며 "경기창계의 대를 이을 池씨가 돌아가신 것은 국악계의 큰 손실" 이라고 말했다.

池씨는 전국 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전주 대사습 민요부문 심사위원장과 한국국악협회 이사 등을 지냈다.

영결식은 3일 오전 10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범국악인장으로 열린다. 애제자 10여명이 그가 평소 가장 좋아했던 민요인 '한오백년' 을 부를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02-3410-6914.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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