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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카페] 데뷔 15년 록 밴드‘크라잉 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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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데뷔 15주년을 맞은 크라잉 넛은 “술 깨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말곤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왼쪽부터 박윤식(보컬)·한경록(베이스)·이상혁(드럼)·이상면(기타)·김인수(키보드). [안성식 기자]

열 받으면 생각난다. 펑크 록 밴드 ‘크라잉 넛’의 이 노래. “살다 보면 그런 거지 우후 말은 되지 …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말달리자’) 발칙한 노랫말과 발랄한 리듬에 막힌 속이 뻥 뚫린다. 크라잉 넛 이전에 이런 감성은 드물었다. 1990년대 중반 서울 홍익대 둘레에서 고개를 내민 인디 문화가 그런 발칙한 감성을 자극했다. 꽉 막힌 세상과 젊은 감성의 보드라운 긴장감이 크라잉 넛 음악의 밑바탕이 됐다.

올해로 데뷔 15년차. 크라잉 넛의 이름은 우리 인디 밴드 문화사의 무게감과 맞먹는다. 아니, 역사니 무게감이니 하는 말은 좀 겸연쩍은 구석이 있다. “재미로 음반 내고 공연하다 보니 훌쩍 15년이 흘렀다”는 게 이들의 소회다. 그 15년 세월이 ‘재미’란 말로 죄다 수렴된다는 얘기다.

그 주장의 진위를 따지고자 시계를 15년 전으로 돌려본다. 초·중·고 동창생인 한경록(베이스)·이상면(기타)·이상혁(드럼)·박윤식(보컬)이 홍익대 앞 클럽 드럭에 있다. 한 밴드가 연주하던 악기를 내려쳤는데, 엉뚱하게도 이들 네 명이 무대에 올라 기타며 앰프를 마구 부수며 난동을 피웠다. 클럽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음은 물론이다. “요것들 봐라” 싶었던 클럽 사장이 이들을 따로 불렀다.

“왜 그랬냐.” (사장) “재밌잖아요.” (크라잉 넛) “녀석들, 오디션이나 봐라.”

악동 밴드 크라잉 넛은 그렇게 탄생했다. 훗날 크라잉 넛 공연을 따라다니던 김인수(키보드)가 합류했고, 15년간 멤버 교체 없이 꾸준히 활동했다.

“무엇보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커요.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는데 밴드 음악으로 15년을 했다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경록) “망망대해에서 표류했던 기분이에요. 주류 음악에 휩쓸리지 않고 인디 밴드를 잘 지켜 와서 다행이죠.”(상면)

98년 정규 1집 ‘말달리자’를 낸 이들은 인디 밴드로선 처음으로 음반 판매량 10만 장을 돌파하는 등 인디 문화의 맨 앞자리를 지켜왔다. “다같이 지르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해왔기 때문” (윤식)이라고 자평했다. 실제로 크라잉 넛은 대중 친화적인 멜로디와 리듬으로 ‘말달리자’ ‘밤이 깊었네’ 등 히트곡을 쏟아냈다. 여기에다 기발한 공연 매너가 더해지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랩 메탈을 들려주겠다며 멤버 전원이 얼굴을 랩으로 싼 채 공연을 하는가 하면, 연주하다 말고 갑자기 레슬링을 해 관객들의 배꼽을 잡기도 했다.

“첫 공연에 관객 세 명이 왔더라고요. 그래도 신나게 노래했죠 뭐.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모두 함께 즐거운 무대를 만들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윤식)

본질상 악동인 이들, 인터뷰 내내 시끌벅적 했다. 한 명이 이야기를 하면 다른 멤버들끼리 장난을 쳤다. 딱 철없는 30대 아저씨들이지만, 지난 15년간 인디 문화의 맨 앞자리에서 이런저런 고민도 깊었단다.

“인디 밴드는 제 마음대로 하면 되니까 쉬운 것 아니냐는 시선이 가장 불편했어요. 인디 밴드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데요.”(상혁) “인디 밴드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우리를 알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경록)

제법 이름을 날린 밴드가 됐지만 홍대 클럽에서 연주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생각이란다. 후배 밴드의 게스트 무대를 마련해주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인디 밴드를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경록)고 했다. 인디 씬의 맏형다운 의젓함이 묻어났다.

23일 오후 7시30분, 24일 오후 5시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선 이들 악동 밴드의 1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열린다. 서른 중반에 이르도록 부러 철들지 않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40주년, 50주년 공연도 어렵잖게 그려졌다. “40주년요? 하하. 폼 나겠는데요. 그때도 지금처럼 미친 듯이 무대 위를 뛰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경록) 공연 문의 02-3274-8600.

글=정강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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