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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된 행정수도 이전 후속대책 제대로 세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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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행정수도 충청권 건설은 특정 정치권에서 제기한 문제였다.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됐고, 이어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을 비롯한 여야의 압도적 찬성으로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됐다.

결과적으로 공약 실천의 책임이 있는 정부나 위헌적 법률을 제정한 정치권 모두 대전.충청에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겼다.

이곳 주민들은 수도권 주민의 반대가 께름칙했지만 국회에서 소정의 절차에 따라 제정된 법률에 의해 입지가 선정되고 보상계획까지 수립됐기 때문에 신행정수도 건설 무산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행정수도가 오는 것이 확정됐으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당해 지역 농민들은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보상을 전제로 대토를 장만하는 것이 최소한의 대비였다. 그들은 1983년 극비리에 추진된 수도 이전 프로젝트인 620사업으로 이주한 이웃지역의 농민들이 도시로 나갔다가 생업을 잃고 걸인이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참담한 결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값.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 농사지을 땅과 내 집을 마련하려다 빚더미에 올라선 농민과 주변지역 사람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 줄 것이며, 멍든 가슴은 누가 보듬어 줄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은 우선 이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하며, 이는 법적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이번처럼 법적 구속력 있는 행정 계획의 취소로 신뢰 이익이 침해당한 경우 위헌 법률을 제정한 국가기관의 위법 부당함이 인정되므로 행정계획의 신뢰와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 손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그 회복을 청구하거나 신뢰이익이 회복될 수 있는 새로운 행정계획의 수립을 요구하는 계획보장 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기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고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충청권의 지역적 이해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이란 과제는 역대정부의 주요 정책목표였고 국가의 경쟁력 제고와 맞닿아 있었다.

숱한 처방이 제시됐지만 수도권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각종 규제로 수도권의 경쟁력은 약화되는 한편 지방은 수도권 집중의 반사적 폐해로 불균형 성장의 고질병이 악화일로에 있다.

이 시점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은 과밀 해소를 위한 거의 유일하면서도 불가피한 최후의 선택이다. 헌재의 결정도 수도가 관습상의 헌법사항이라는 확인이지 수도 이전의 당위성 여부에 관한 판단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신행정수도 건설의 정책적 목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지역과 정치권의 이해대립으로 공감대 형성이 어렵지만 앞으로 새로운 행정수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헌법 개정이나 이른바 관습헌법의 변경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행정수도를 전제로 한 대안 모색은 위헌이라 할 수 없으므로 앞으로의 논의도 신행정수도 건설의 근본취지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를 충청권의 문제로 보고 충청 시.도민을 달래는 사탕발림식 대책이 아니라 동북아 중심국가로 대한민국을 도약시키려는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역사적 과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첫발을 내딛는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공약 이행에 필요한 국민적 합의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정부나 위헌적 법률을 제정한 정치권 모두 법적.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행정수도 문제에 대한 명쾌하고 조속한 답안 제출을 촉구한다.

염홍철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