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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치는 지독한 절망 그렸다, 그래야 희망 얘기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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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준익 감독은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영예이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족쇄”라고 말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왕의 남자’에서 온전히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의 새로운 실험이다. [조용철 기자]

영화는 현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꿈틀거리는 ‘생물체’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람 중 하나가 이준익(51) 감독이다. 그는 사실상의 데뷔작인 ‘황산벌’(2003년)을 비롯해 126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2005년) 등의 사극에서 전쟁과 권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곡진하게 그려왔다.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를 빌려왔지만 그의 영화는 ‘지금, 여기’와 견주어지면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29일 개봉하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도 그런 맥락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대신, 전편 두 작품과 화법이 많이 달라졌다. ‘권력(정치)은 진정 백성(국민)을 위했었나’라는 전작의 문제의식이 ‘모두가 잘 사는 좋은 세상은 없다’는 나름의 확신으로 강하게 표현됐다. ‘천만영화 감독’이란 과거의 ‘구름’에서 ‘버서나고자’하는 감독의 욕망, 혹은 강박도 읽힌다.

배경은 임진왜란 무렵. 서손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선조의 정치적 한계, 동인과 서인의 극심한 반목, 때맞춘 왜군의 침략 등 지금 못지 않은 시대의 혼란이 두루 그려진다. 떠돌이 맹인검객 황정학(황정민), 울분에 찬 양반집 서자 견자(백성현), 반란을 기도하는 혁명가 이몽학(차승원), 몽학을 사랑하는 기생 백지(한지혜)가 그 격변을 온몸으로 겪는 이들이다. 21일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또 다시 사극이다. 달라진 게 있나.

“‘왕의 남자’‘황산벌’은 상반된 사람들이 부대끼며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였다. ‘구르믈’은 정반대로 갔다. 일체의 낭만적 포장을 피하려 했다. 여기서 관객이 ‘왕의 남자’를 느낀다면 난 실패한 거다. 이 영화에선 군신·부자·동료·연인 등 모든 관계가 해체된다. ‘왕의 남자’와 다르게 가야 한다는 강박이 날 이렇게 끌고 간 건지도 모른다. 관객이 등장인물들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다면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견자를 ‘왕의 남자’의 공길(이준기)이나 ‘황산벌’의 거시기(이문식)처럼 흡인력 있게 만들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 안 되더라. 견자는 요즘 젊은 세대를 직유한 거다. 견자는 기생의 아들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묶여 꿈을 꾸지 못한다. 그래서 이름도 사람 자식이 아닌 개의 자식, 견자(犬子)다. 우석훈 교수는 ‘88만원 세대’라고 했지만, 난 그들을 ‘약정세대’라고 부르고 싶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모든 것이 할부와 약정으로 묶여 있는 세대, 갚아야 하니 묶여 있는 그런 세대다. 돌파구 없이 끌려 다니는 세대라고 할까. 기성세대가 된 386세대로부터 미래를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약속 받지 못한 이들이다.”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리얼하다. 폭소가 터지면서도 씁쓸하다.

“420여 년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기막히지 않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우는 좌를 비방하고 좌는 우를 인정하지 않으니 그 새가 날 수 있겠나. 서로의 가치를,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할 때 현실을 함께 돌파할 수 있는 건데. 젊은이들은 꿈을 가질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데 기성세대들은 쌈질만 하고 있지 않은가.”

-“육지는 신립이, 바다는 이순신이 지키게 하라”고 선조(김창완)가 말하는 대목이 압권이다.

“누구는 임금을 지나치게 바보로 만든 게 아니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붕당정치에 휘둘려 민안(民安)을 살피지 못했던 시대의 비극을 임금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뿐이다. 피난지를 놓고 의주냐 함경도냐를 놓고 두 당파가 싸우자 임금이 버럭 성내지 않느냐. ‘도망가는 것도 의견통일이 안돼!’”(웃음)

-위정자들이 도망간 궁궐에서 역적과 서자가 마지막 칼싸움을 벌인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궁궐이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세 종류의 싸움이 벌어진다. 근정전에선 중신들의 자중지란, 근정원에선 이몽학의 반란, 근정문 밖에선 왜란. 나라가 정말 갈 데까지 간 거다. 막장이다. 둘의 칼싸움은 그 지독한 절망의 농축이다. 바닥을 치는 절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없이는 희망을 얘기할 수 없으니까.”

원래 영화는 댕기머리 청년 견자의 성장통을 그린 동명의 원작만화(박흥용 지음) 설정을 그대로 끌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준비기간 5년 동안 세상은 너무나 달라졌고, 감독은 절망과 허무의 색채를 짙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만큼 우리의 살림살이가 고단해졌다는 뜻일까. 현재와 과거의 대화, 생물체로서의 영화를 추구해온 이 감독의 씁쓸한 세상읽기에 우리 시대 관객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할지 궁금하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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