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選擧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6·2 지방선거가 41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選擧)에는 본디 두 가지 뜻이 있다.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것과, 인재를 뽑아(選) 등용한다(擧)는 의미다. 영어로 말하면 전자는 Election, 후자는 Selection인 셈이다. 세습(世襲)을 통해 귀족들이 독점하던 관직을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으로 충원한 것이 선거의 옛 뜻이다. 한(漢)대에는 지방에서 인재를 천거(薦擧)하고 중앙이 임명하는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가, 남북조시대에는 지방에 설치된 인재 선발관청[中正]이 아홉 등급을 매겨 중앙에 천거하는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이 시행됐다. 지방의 여론을 묻는 방식이 오늘날 지방자치제와도 연결된다. 수(隋)나라에 이르러 시험을 통해 선발[考選]하는 과거(科擧)제가 시작됐다. 이후 예부(禮部)는 과거와 학교 성적으로 선비(士)를 선발하고, 이부(吏部)는 인재를 저울질[銓選]하고 성적을 평가[考績]해 관리를 선발했다. 『예기(禮記)』에 “대도(大道)가 행해지면 천하에 공의(公義)가 구현되고, 어진 자를 뽑아 위정자를 삼고 능력 있는 자에게 관직을 부여한다”라고 전해진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해 임용하는 것(選賢擧能)은 유교사회의 이상이었다.

청(淸) 말에 이르러 중체서용론자 정관응(鄭觀應)이 『성세위언(盛世危言)』에서 근대적인 선거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의원 선거는 민주·군민공주(君民共主)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가장 중요한 제도”라면서도 선거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공거(公擧)를 제안했다.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가르쳐 한대의 향거리선제를 부활하자는 주장이다.

우리 선조들도 선거를 중시했다. 조선시대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는 저서 『인정(人政)』에서 “국가의 안위는 인재를 선거하는 날에 결정 난다(國事安危, 判於選人之日)”며 “소인을 내쫓으면 기뻐하고, 군자를 물러나게 하면 걱정한다(黜小人而喜, 退君子而慽)”고 말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은 ‘천거한 사람이 자격자가 아니면 죄가 천거한 사람에게 미친다(所擧非人, 罪及擧主)’고 적었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정당의 공천 담당자가 보면 뜨끔할 내용이다.

지방선거는 풀뿌리(草根) 민주주의의 기초이며,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의 자랑할 만한 소프트 파워다. 유권자의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