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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재정대책] 허점 드러낸 '숫자놀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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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건강보험재정 안정화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각종 대책을 백화점식으로 쏟아내 숫자 맞추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제시한 참조가격제.차등수가제.총액예산제 등은 제대로 검증이 안돼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실험적인 대책이었다. 이 때문에 ▶시행도 하지 못하는 대책이 속출하고(담배부담금 등)▶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며(진료내역 통보 등)▶국민 반발을 사는(참조가격제 등) 등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 재정수입 차질=정부 지원분 중 40%는 국고에서, 10%는 담배부담금에서 조달하기로 했으나 올해 국고 지원 7천3백54억원은 추경예산안에 포함돼 국회 계류 중이다. 9월까지 추경안 처리가 늦춰지면 먼저 빌려쓰는 돈만큼 이자부담이 증가한다.

8월부터 시행키로 했던 담배부담금은 근거 법률인 건보재정 안정화 특별법이 연말에나 시행될 것으로 보여 올해 3천여억원의 적자가 늘어나게 됐다.

한나라당이 반대해 내년 시행마저 어려워질 경우 내년 지역건보 수입도 6천6백여억원 차질을 빚게 된다.

내년 건보료 인상률 목표(지역.직장 각각 9%)달성도 쉽지 않다. 정부는 근로자 명목임금 인상률이 6.25%에 이를 것으로 가정하고 건보료 인상률을 정했으나 임금상승률은 지난 1월 19.8%에서 6월에 3.5%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건강연대 강창구 정책실장은 "정부 대책 가운데 환자 본인부담금 인상 효과만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어 내년 건보료를 인상하려면 국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 대책의 허점=참조가격제는 찬성하는 곳이 거의 없다. 지난 7월 환자 본인부담금을 40% 가량 올린 보건복지부는 참조가격제 역시 환자부담이 또 늘기 때문에 섣불리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 그동안 소득이 있으면서도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건보료를 내지 않던 40만명에게 별도 건보료를 부과하려 했으나 33만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 건보료가 종전 가입자의 두배에 가까운 6만원에 육박해 소형 건물 임대료를 받아 생활하는 퇴직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의사들과 마찰을 빚어가며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진료내역 통보에 33억원의 사업경비가 들어갔으나 부당청구로 밝혀져 환수할 돈은 23억원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지난 6월까지는 의사들의 과잉진료시 처방료를 삭감했으나 7월 처방료와 진찰료를 통합했기 때문에 삭감률이 목표치인 1.5%에서 1.3%로 떨어질 전망이다.

◇ 의료계 반발=복지부는 주사제와 항생제.고가약을 많이 쓰는 의료기관을 평가해 진료비를 최고 10% 삭감하는 약제비 적정성 평가를 지난 7월부터 시행해 연간 7백84억원을 절감키로 했으나 최근에야 시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또 지난해 7월 의약분업을 강행하면서 도입했던 원외처방료.주사제 처방료 등을 최근 다시 진찰료에 통합하다 보니 의료계에 줬던 것을 뺏는 모양새여서 강한 반발에 부닥쳐 있다.

◇ 건보재정 안정대책=의약분업 등으로 건보재정이 거덜나면서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4조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자 수입은 늘리고 지출을 줄여 1조1천여억원으로 맞추겠다는 것이 골자다.

즉 지난해 말 적립금(9천2백여억원)과 국고 보조.담배부담금 등으로 일부를 충당하고 나머지 1조1천여억원은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뒤 2006년까지 갚아 나간다는 것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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