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동순 '새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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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들길을 가는데

길 옆 풀숲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깃을 치며 푸드덕 달아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새가 달아난 자리에 가 보니

풀잎을 촘촘히 엮어 만든 둥지 안에

두 개의 새알이 있었다

아, 포르스름한 그 것은 내가 세상에서 맨 처음 보는

가장 애틋하고

눈물겨운 빛깔이었다

-이동순(1950~ ) '새알'

산다는 것은 이처럼 깜짝 놀랐다가 조용히 무엇을 발견하는 것일까. 포르스름한 두 개의 알을 품고 있다가 저 또한 깜짝 놀라 깃을 치며 날아올랐을 작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동순 시는 이처럼 늘 생명 가진 것들에서 애틋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서는 여름밤 깊은 강물에 몸을 담갔을 때의 어떤 따스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들이 내뿜는 그윽한, 강렬한 온기(溫氣)같은 것 말이다.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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