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수해지원 "외국인 안된다"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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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구로3동 다세대주택에 사는 중국동포 孫모(59.여)씨는 지난 폭우 때 1층 방이 잠겨 이부자리는 물론 바닥 장판과 벽지가 모두 벗겨졌다.

2주째 스티로폼을 깔고 생활하는 孫씨는 26일 동사무소에 피해복구비 지원을 요청했다가 "주민등록증이 없는 외국인이라 복구비를 줄 수 없다" 는 답변을 들었다. 구청과 구호단체가 보낸 라면.김치 등 긴급구호품도 못받았다.

서울시는 지난 20일 피해 가구당 복구비 90만원씩을 주기로 한 정부 방침에 따라 이들에게도 같은 액수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관할 구로구청과 동사무소는 이들이 외국인 신분이라는 법적인 문제를 들어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 지급했던 복구비도 반납=구로5동 반지하 단칸방의 金모(47)씨는 지난주 동사무소의 피해조사 때 이름과 계좌를 적어줘 24일 복구비 90만원을 입금받았다. 그러나 다음날 동사무소에서 "알고 보니 당신은 외국인이더라" 며 반납을 요구해 다시 돌려줘야 했다. 金씨는 "똑같은 피해자인데…" 라며 "두번 울었다" 고 씁쓸해했다.

구청에 집계된 이 일대 중국동포 침수 가구는 1백여세대. 이곳에 위치한 서울 조선족교회측은 "자체 신고 접수 결과 침수복구비 지원방침이 발표된 뒤 동사무소를 찾았다가 거절당한 중국동포가 수십명에 이른다" 고 말했다.

◇ 불명확한 지원 방침=서울시의 중국동포 지원 발표가 있자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관련 법규에 따라 외국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 이의를 제기했다.

구로구청측도 "한국인인 집주인이 대신 피해신고를 해줄 경우에 한해 주인에게만 복구비를 줄 수밖에 없다" 는 입장이다. 이같은 이유로 27일까지 중국동포에게 수해복구비가 지원된 사례는 한건도 없는 상태다. 조선족교회 최황규 목사는 "정부의 지원 방침이 현실화되도록 배려하는 일선 관청의 성의가 아쉽다" 고 말했다.

정효식.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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