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5일 근무제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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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대한 결론을 빨리 내릴 것을 언급한 데 이어 어제 노동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선 기획단을 구성, 연내 입법 추진 의사를 밝혀 본격 도입에 시동을 걸었다.

주5일 근무가 시대의 대세인 점은 분명하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욕구가 갈수록 커지는데다 장시간 근로에 근거한 개발연대식 성장은 접을 때도 됐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장시간 노동국가로 낙인이 찍힌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문제는 이를 도입할 만큼 충분히 여건이 정비돼 있느냐는 의문이다. 주5일 근무제는 단순히 근로시간 단축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과제다. 학교의 수업 제도는 물론 여가 문화의 정착 등 사회 각 부문의 제도와 관행이 함께 개선돼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

걱정은 또 현재 경제가 어려운 내리막에 있다는 점이다. 경기회복은 아직 먼데, 투자와 수출이 오그라들고 산업 경쟁력은 갈수록 저하되는 가운데 주5일 근무제 도입 논쟁이 불러올지 모를 산업현장의 이완과 사회의 '놀자' 풍조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감안한 제도 정착을 위해선 국제적 기준 설정과 단계적 도입이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

주5일 근무제는 지난해 가을 노사정 회의에서 총론적 합의를 이뤄 어느 정도 공론화를 거친 상황이다. 그럼에도 노사 양측이 반년 이상 결론을 못낸 것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복잡한 휴일제를 비롯한 연월차 휴가를 국제 수준에 맞춰 정비하고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료 개혁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혼란을 빚어낸 이유는 준비는 부족한데 의욕만이 앞선 데 있다. 주5일 근무제 도입도 이런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면 법과 제도의 정비는 시작하되 시행은 단계적으로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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