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21년간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제자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서울대 인문대 중어중문학과(학과장 宋龍準)교수들 얘기다.
인세(印稅).외부 강의료 등을 적립해 마련한 1억5천만원을 올 2학기부터 중문과 대학원생과 대학원을 지망하는 학부생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학기당 1천만원씩 연 2천만원을 나눠주게 되며 장학금 이름은 따로 없다.
외부 도움 없이 학과 교수들이 마련한 '은사 장학금' 인 셈이다.
유례도 없는 일이지만, 특히 이렇다할 연구비조차 없는 '가난한 학과' 전(全)(현직 8명.퇴임 4명)교수들의 '제자 사랑' 이란 점에서 교내에 화제가 되고 있다.
모금이 시작된 건 1980년. 지금은 정년퇴임한 김시준(金時俊.66).최완식(崔完植.70) 두 교수가 "언젠가 학과 발전을 위해 쓸 돈을 모아보자" 며 계좌를 만들었다.
이후 학과장 명의로 통장이 대물림되면서 1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백만원 단위까지 돈이 쌓였다.
이 돈을 장학금으로 쓰기로 한 것은 최근 교내의 기초학문 분야 왜소화 논란이 계기가 됐다.
지난 5월 인문대 교수들의 집단성명이 나올 때 중문과 교수들은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 고 뜻을 모았다.
이미 학교를 떠난 선배 교수들도 "적어도 학생들이 학비 걱정만은 하지 않도록 하자" 고 취지를 설명하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중문과의 경우 IMF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특수(特需) 때문에 매년 대학원 선발인원(현재 10명)의 4~5배가 지원했었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졸업생들이 취업쪽을 택하면서 최근엔 서울대 중문과 학부 졸업생 중 두세명만이 진학하고 있다. 그래서 외부 지원자들로 근근이 정원을 맞춰가고 있는 형편.
더욱이 내년부터는 모집단위 광역화로 전공 학부생 모집도 쉽지 않으리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학과장 宋교수는 "비록 많지는 않지만 전 교수들이 긴 세월 동안 참여해 만든 기금이라는 데 보람을 느낀다" 며 "후배들에게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고 기대했다.
이 학과 박사과정 유경철(32)씨는 "선배들의 정성이 깃들인 돈으로 꿋꿋하게 학문에 정진할 힘을 얻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지난 23일 6백여 동문들에게도 편지와 e-메일을 보내 장학금 모금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조민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