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소행 드러나도 김정일 지시 입증 쉽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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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임스 딜레이니(사진) 미 국방연구소 상임고문은 13일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 “북한 소행으로 드러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시로 인한 것인지는 밝혀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는 군사 보복 대신 국제사회에서 해결책을 찾을 것이며, 결국엔 북한이 패배자(Loser)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국제안보정책포럼(운영위원장 김병기)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1983∼86년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을 지냈으며 83년 10월 9일 북한에 의한 아웅산 폭탄테러를 다뤘다.

딜레이니 고문은 “아웅산 테러는 김일성·김정일이 지시한 게 아니라 북한군 내 강경파의 독자적 소행이란 게 내 결론”이라며 “당시 북한과 미국은 중국의 중재로 평화협상 중이었으며, 북·미 간 평화를 원하지 않던 북한군 강경파가 긴장을 조성하려고 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년 전 북한 인사들을 만나 이런 의견을 들려주니, 그들도 동의했다”며 “이처럼 북한의 의사 결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혼자가 아니라 다층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이번에도 김 위원장의 지시 여부를 입증하긴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북·미 간 평화협상에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으나, 미국이 진행 상황을 계속 알려줬다”고 덧붙였다. 딜레이니 고문은 “아웅산 테러 사건 당일 주한미군 사령관이 연 한·미 전군 지휘관 회의를 비롯해 (한·미의) 모든 고위급 회의에 참석했지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필두로 한국의 고위 관리·장성 가운데 ‘보복하자’고 주장한 이는 없었다”며 “딱 한 명의 장성이 DMZ 인근에서 보복할 뜻을 비쳤으나, 한·미 수뇌부가 ‘잃을 게 너무 많다’고 말려 뜻을 접었다”고 말했다.

딜레이니 고문은 “한·미가 (북한 소행이란) 증거를 확보해 국제사회에 제소하면 중국·러시아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밖에 북한을 돕거나 거래해온 나라들도 평양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어 결국 북한이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동맹국 한국의 처지를 이해해 북핵에 앞서 천안함 사건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북·미 양자회담과 6자회담은 천안함 사건이 규명되기까지는 동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만일 내일 북한 관리가 워싱턴에 전화해 ‘북·미 양자회담을 열자’고 요구하면 미국 관리들은 ‘천안함 사건부터 먼저 해명하라’고 말할 것”이라며 “ 한·미 간 협력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강조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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