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황제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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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사람이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농담 한 토막. 러시아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로 갈아탄 뒤의 일이다. 한 농부가 길에서 요술램프를 주웠다. 정성껏 문지르니 요정이 튀어나와 소원을 말해 보란다. 곰곰 생각하던 농부는 “내겐 소가 세 마리뿐인데 이웃집은 열 마리나 갖고 있지 뭔가”라고 운을 뗐다. “아, 그럼 소를 스무 마리쯤 갖고 싶겠군요.” 요정이 넘겨짚었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농부가 하는 말. “아니, 그냥 이웃집 소 일곱 마리를 죽여주면 안 되겠나.” 오랜 세월 속속들이 밴 공산주의적 습성을 하루 아침에 떨치진 못하더란 얘기다.

이렇듯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론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힘들다. 진나라 혜제 때 주처(周處)의 처지가 딱 그랬다. 아비가 죽은 뒤 온갖 못된 짓을 일삼던 그는 마을 사람들이 “인근 산속 호랑이와 못의 용, 그리고 주처가 세 가지 해악”이라며 수군댄다는 사실을 알곤 잘못을 깊이 뉘우친다.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목숨을 건 혈투 끝에 호랑이와 용을 죽이고 의기양양하게 마을로 돌아온 주처. 하지만 “두 가지 해악은 사라졌으나 가장 해로운 주처가 살아 남았다”는 싸늘한 반응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낙담한 그는 이내 마음을 추스르곤 학문에 정진하며 이웃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도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둔 뒤 주처가 허물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된 것을 칭찬했다 한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옛말이 여기서 나왔다.

철저한 변신 없이는 패자부활전의 성공도 없다. 섹스 스캔들로 곤두박질쳤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예외가 아닐 터다. 어제 마지막 라운드를 치른 마스터스 대회에서 그는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재기의 신호탄을 올렸다. 하지만 샷이 잘 안 풀리면 욕해대는 성깔도 여전했단 후문이다. 곧장 사과하며 달라지려 애쓰는 모습에 일단 갤러리는 야유 대신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수 차례 눈물로 참회하며 약속했던 진짜 변화까진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앞으론 실력뿐 아니라 개과천선의 의지로 평가 받을 것”(빌리 페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회장)이란 쓴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혹 도움이 될까 싶어 할리우드의 ‘돌아온 탕아’ 미키 루크의 고백도 전한다. 지난해 화려한 복귀에 성공한 뒤 했던 말이다. “나는 변하기 너무 힘든 남자지만 (영화를 위해선)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