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MD' 기싸움 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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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이 지난 14일(한국시간 15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요격 실험을 실시, 성공한 후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강행 방침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의 알렉산드르 야코벤코 대변인은 15일 "미국의 요격미사일 실험은 핵무기 철폐와 핵비확산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합의한 체제와 그 핵심이 되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을 위태롭게 하는 짓" 이라고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도 16일 "MD체제는 전세계의 전략적 균형과 안정을 해칠 것" 이라고 비난했고,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이같은 방어태세를 보유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을)자극할 수도 있다" 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측이 이번 실험에 강력 반발하면서도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코벤코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나 ABM협정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미국과 이른 시일 안에 실질적인 대화를 진행할 준비가 돼 있다" 며 미.러간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었다.

미국측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기간 중 회동할 때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이번 협상에서 뭔가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은 부시 대통령이 "ABM협정을 파기하지 않고 미사일 요격 실험 실시와 MD체제 구축을 할 수 있도록 러시아측과 포괄적인 핵협정을 맺거나 공동성명 등의 방식으로 러시아측의 이해를 구하는 방안을 타진할 것" 이라고 15일 전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달 18일 슬로베니아 미.러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일방적 독주에 반발하면서도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겠다는 다소 유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는 적어도 겉으로는 서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전혀 낮추지 않고 있다.

푸틴은 16일 한 이탈리아 언론과의 회견에서 "만일 미국이 ABM협정에서 탈퇴한다면 러시아는 다탄두 핵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갖게 될 것" 이라면서 "비록 (미국의 요격)실험이 성공하더라도 수천개의 핵폭탄을 방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두렵지 않다" 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도 러시아와의 협의를 강조하면서도 오는 9월께 또 다른 요격 실험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당분간 양국간 기싸움이 대단할 조짐이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제노아에서의 양국 정상회담이 MD체제 추진 속도와 주요 관련국 및 동맹국들의 이 문제에 대한 입장 정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서울=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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