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메이드 인 차이나’ 사라지면 월마트 매장 70%가 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산 없이 살 수 있나=5년 전 본지오니가 겪은 것처럼 미국인들은 여전히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웨이크업월마트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중국산이 사라질 경우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 매장의 공간 70%가 비게 된다. 6만여 개에 이르는 월마트 납품업체 가운데 중국에 기반을 둔 곳은 무려 80%에 이른다.

해가 갈수록 ‘메이드 인 차이나’는 미국인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높은 분’이라고 중국산 홍수를 피해갈 순 없다. 지난해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아이팟을 선물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 아이팟은 미국산이 아니라 저임 노동자가 만든 중국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오바마가 즐겨 신어 ‘오바마 운동화’로 불리는 나이키 에어조던포스, 그가 즐겨 입는 운동복이나 아이들이 쓰는 학용품에도 중국산은 숨어 있다. 2007년 미국 미네소타주는 모든 상점에서 ‘미국산’ 성조기만 팔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지만 독립기념일 축하행사용 화약이나 성조기는 태반이 중국산이다. 중국산이 몽땅 사라진다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의 화려함은 예전만 못하고, 운동화와 학용품은 품귀 현상이 빚어질 판이다.

◆미국만 중국산 쓰나=중국산은 미국에서만 넘쳐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소형 가전의 경우 중국산이 세계시장의 90%를 휩쓸고 있다. 에어컨과 전자레인지는 약 70%, 냉장고와 세탁기는 40%를 장악하고 있다. 전 세계인 10명 가운데 7명꼴로 중국산 신발을 신고 다닌다.

중국의 지난해 주요 개별 제품의 생산량은 휴대전화 6억1900만 대, 컬러TV 9899만 대, 소형컴퓨터 1억8200만 대였다. 전 세계 출고량의 50%, 48%, 60%에 해당하는 규모다.

제조업 기지인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의 사례는 ‘메이드 인 차이나’를 상징한다. 이 도시에서 만든 컴퓨터 자기헤드와 케이스, 반제품은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한다.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박한진 부장은 “주요 제품들의 시장 점유율을 보면 세계의 소비자들이 중국 없이는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산이 미제 내몰았나=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중국산은 2964억 달러어치다. 미국 전체 수입의 19%나 된다. 미국의 대중 수출은 696억 달러어치로 전체 수출의 6.6%에 불과하다. 이것만 보면 미국은 일방적으로 중국에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산 수입이 느는 사이 미국의 대중 수출은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 지난해 대중 수출액은 1996년의 5.8배였다. 대중 수입액은 같은 해와 비교해 5.75배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더 큰 타격을 입은 쪽도 중국이었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수출이 전년보다 2.6% 감소한 반면, 중국의 대미 수출은 12.2%나 줄었다.

문제는 교역이 늘수록 미국의 무역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중 무역적자는 2268억 달러. 2004년보다 40% 늘었다. 또 대중 적자는 지난해 미국 전체 무역적자(5010억 달러)의 45.3%를 차지한다. 2004년엔 이 비율이 24.8%(1620억 달러)로 절반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들, 과연 중국산이 미국산을 내몰았기 때문에 나타난 걸까. 많은 미국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반론이 만만찮다. 73년 설립된 주중 미국 기업 단체인 미중무역전국위원회(USCBC)는 지난달 24일 이렇게 주장했다.

“당신 가정의 TV는 중국산일 수 있다. 그러나 15년 전에는 일본산이었을 것이다. 중국산 수입품은 과거 다른 나라 수입품을 대체한 것뿐이다.”

중국산이 사라진다고 그 자리를 미국산이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다.

◆미국의 노력도 필요=위안화 절상론자들은 낮게 평가된 위안화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키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위안화가 비록 2005년 7월 환율제도 변경 이래 21%가량 절상됐으나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추가로 25%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대로 위안화가 절상될 경우 미국은 같은 양의 중국산을 수입하는 데 741억 달러를 더 써야 한다. 이는 지난해 대중 수출 총액을 웃돈다. 수출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으면 무역적자가 더 커지는 셈이다.

물론 위안화 절상으로 수입가격이 오르면 미국 내 소비는 줄어든다. 그렇지만 중국산을 대체할 미국산이나 다른 외국산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본지오니처럼 중국산 없이 살기 어려운 미국인들은 위안화가 절상될 경우 당장 얻는 것에 앞서 잃는 것부터 고민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위안화 절상의 덕을 보느냐 여부는 이를 수출 증대의 동력으로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허귀식·장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