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국 ‘판즈화의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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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판즈화의 고통’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쓰촨·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광시(廣西) 등 판즈화가 피는 지역이 사상 최악의 가뭄 재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약 6000만 명이 물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고, 이 중 2000만 명은 식수가 끊겼다. 워낙 범위가 넓어 정부의 구호대책도 역부족이다.

‘지대물박(地大物博)’. ‘땅은 넓고 물자가 풍부하다’는 뜻으로 중국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중국은 사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물이 부족한 나라다. 전국 655개 도시 중에서 400개 도시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이 중 110개 도시는 위험한 수준이다(중국 국토자원부). 이번 가뭄이 닥친 서남부 말고도 서북부 지역 많은 도시가 1년 내내 물 부족에 시달린다. 수도 베이징 역시 식수 확보에 애를 먹을 정도다.

물만이 아니다. 광물자원 역시 풍족하지 않다. 석유의 경우 전체 매장량은 약 30억t으로 세계 10위다. 그러나 인구를 감안하면 다르다. 1인당 석유 매장량은 세계 평균 수준의 15%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생산이 경제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자동차 대수는 약 1365만 대에 달했다.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의 약 80%가 불과 1년 사이에 중국 거리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자동차는 ‘석유 먹는 하마’다. 석유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요 도시에서는 ‘가솔린’ 파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석유가 없으니 해결할 방법은 국제시장에 나가 사오는 것뿐이다. 지난해 중국의 석유 수입량은 약 2억t으로 전년 대비 14%가 늘었다. 1992년까지만 해도 석유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수요의 절반 이상(51.2%)을 수입에 의존해야 할 판이다. 지난 수년간 국제 석유 수요 증가의 약 25% 이상은 중국 몫이었다.

다른 광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중국은 세계 시멘트 소비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고 철강석 약 30%, 구리 40%를 혼자 먹어치우고 있다. 국제 원자재 시장이 출렁일 수밖에 없다. 이쯤이면 ‘지대물박(地大物薄)’이래야 옳다. 땅은 넓지만(地大) 물자가 부족(物薄)한 중국의 자원 분포가 세계 경제에 부담을 주는 구조다. ‘판즈화의 고통’을 중국 국내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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