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토크쇼] '들뢰즈-존재의 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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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신간은 1990년대 들어 우리 지식사회에서 각광을 받은 프랑스의 탈근대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의 사상을 비판한 책이다.다소 생소한 이름인 저자 바디우는 현재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마르크시즘 철학자.들뢰즈 자살 2년뒤 처음 출간됐다.

국내에서 들뢰즈 철학을 기반으로 동서양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활발하게 활동중인 두 소장 학자인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과 이진경 ‘연구공간 너머’연구원이 만나 들뢰즈가 이 시대에 갖는 의미와 바디우의 비판을 점검했다.

이 두 사람은 『들뢰즈-존재의 함성』읽기를 통해 단순한 현학적 철학을 넘어 이 시대 제3세계 지식인들의 성찰을 위한 암시를 받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사회=들뢰즈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철학이 서양철학사의 전통과 구별되는 점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이진경=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대비로 말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헛소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서양 철학에서 비합리적이라는 말은 타자(他者)를 배제해 온 방식이었다.

▶사회=들뢰즈 철학을 비합리주의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이진경=그렇다. 서양철학사에선 끊임없이 하나(一者, the One)의 원리를 추구해 왔다. 그 '일자' 를 신, 이데아, 혹은 보편 등으로 바꿔 불렀지만, 실은 그것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일하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억업해왔다.

보편은 폭력을 동반한다. 동일성과 합리성이 서양철학사를 관통하는 전통이라면 들뢰즈는 그 전통에 반기를 들고 배척받아온 타자와 비합리성을 되살려내려고 했다.

▶이정우=들뢰즈가 차이와 우연과 생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일자' 를 인정하지 않는 들뢰즈에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간의 '차이 그 자체' 가 있을 뿐이다.

차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사물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적 사건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보편과 문명과 진보란 이름으로 자기와 다른 것들을 배제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진경=들뢰즈가 볼 때 합리성의 기준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다. 근대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잣대와의 동일성의 정도로만 판단하면 타자는 모두 미신이 된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응용되면 박해가 된다.

진리는 너무 많아 하나의 대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들뢰즈의 생각이다. 진리는 하나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대주의, 비합리주의, 반과학적으로 보이니 들뢰즈를 무정부주의자로 비판할 수도 있다.

▶이정우=지금 논의의 핵심에 다가섰다. 우리 시대를 근거짓는 합리성은 서구 근대의 부르주아적 합리성이다.

그것은 자연과학적이며 경제적 특징을 보인다. 들뢰즈가 비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서구 근대적 합리성의 실체다.

▶사회=그렇다면 들뢰즈나 바디우나 모두 근대 자본주의를 비판한 셈인데 왜 들뢰즈를 바디우가 또 비판한 것일까?

▶이정우=들뢰즈가 근대적 폭력성을 비합리주의의 이름으로 비판했다면, 마르크시스트인 바디우는 또 다른 합리주의로 비판하려는 것이다. 비판 대상은 같으나 다른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진경=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바디우도 모든 것을 보편이란 이름으로 두드려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보편적 기준에서 벗어난 돌출, 초과 등의 개념으로 예상 밖에 일어나는 일들을 개념화하려고 했다. 궁극적으로 바디우는 들뢰즈처럼 비합리주의로 가지 않아도 돌출이나 우연적 사건을 과학적 합리주의 전통속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회=추상도가 높은 담론이지만, 실은 우리 제3세계의 모더니티 문제와도 직결된 사안으로 판단되며 풍부한 암시를 전해준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이진경=수학을 공부한 바디우가 들고 나온 무기는 집합론이다. 부분집합의 수는 모든 요소들의 합보다 많다는 수학논리를 근거로 이미 돌출적 사건이나 우연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얘기를 조금 바꿔 들뢰즈 철학의 현실적 배경은 무엇일까를 물어보자.

▶이정우=프랑스에서 좌익과 우익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우익이란 '이민자 박해 집단' 과 동의어다.

프랑스에서 사회주의자는 외국인이란 타자들을 포용하고 인권운동을 벌이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다. 그런 점에서 들뢰즈도 좌익의 관심과 동일선상이다.

▶사회=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이정우=바디우와 들뢰즈의 대립도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간 전통적 대립의 새 버전이다. 그러나 바디우는 들뢰즈의 주요 개념인 사건의 생성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또 바디우가 들뢰즈를 무정부주의자라고 정치적 비판을 하는데 그럼에도 들뢰즈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저작으로 평가받는 『안티 오이디프스』와 『천의 고원』이 인용 목록에서 빠졌다.

▶이진경=서구인이 아닌 우리는 오히려 더 서구적으로 사고한다. 동일성의 철학, 근대 서구적 합리성 말이다.

그런점에서 들뢰즈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암시는 중요하다.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서구인이 17, 18세기에 흑인들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민족주의란 동일자의 논리가 작용한다. 끔찍한 배타주의다. 정체성을 찾는 것이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로 작용하는 것은 문제다.

사회.정리=배영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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