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 몰린 국회의원 후원금 …‘톱10’ 중 8명 차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후원금은 권력에 따라 흐르는 게 속성이다. 힘센 정치인이나 인기 있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이 몰리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8일 공개한 ‘2009년도 정당·후원회 등의 수입·지출 내역’을 보면 이런 속성이 뒤집혔다. 지난해 국회의원 296명(2009년 12월 31일 기준) 중에서 후원금 모금액 상위 10명은 민주당 4명, 민주노동당 4명, 한나라당 2명이 차지했다. <표 참조>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2억2135만원을 거둬 개인별 모금액 1위를 차지했다. 2, 3위는 민노당 권영길 의원과 홍희덕 의원이 기록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론 권경석 의원이 6위, 고흥길 의원이 10위에 턱걸이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2008년만 해도 상위 10명 중 8명이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1년 사이에 후원금 모금에서 ‘야고여저(野高與低, 야당은 높고 여당은 낮다는 의미)’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특히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08년 3억6183만원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2억원 이상 줄어든 1억5470만원을 모금, 81위로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후원금 모금 규정이 불러온 기현상이다.

정치자금법은 대선·총선 등의 전국 선거가 없는 해에는 의원 1인당 1억5000만원까지, 선거가 있는 해에는 그 두 배인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지난해 상반기에 이미 모금 한도액인 1억5000만원을 넘어 계좌를 폐쇄했기 때문에 기부액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보니 고액 기부자 명단에 단골로 등재됐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이름이 이번 명단에선 빠지는 일도 생겼다고 한다.

더구나 현행법은 한도액을 초과해 모금하더라도 1년 동안 쓸 수 있는 금액은 한도액으로 제한하고, 남는 후원금은 다음 해로 넘기거나 자체 인건비·홍보비 등으로만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18대 총선이 치러진 2008년에 대부분 의원들이 후원금을 한도액을 넘겨 거뒀다”며 “그 결과 지난해에는 후원금 모금에 열의를 보이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힘 조절을 했다”는 의미다.

그 결과 정당별 1인당 평균 모금액도 민주노동당이 1억8755만원으로 1위에 올랐고, 한나라당(1억4344만원), 민주당(1억3844만원)의 순이었다.

◆누가 후원 많이 했나=지난해 300만원 넘게 후원금을 낸 사람 중엔 기업인들이 다수 포함됐다. 배상면 국순당 회장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1인당 기부할 수 있는 최대 한도인 500만원을 기부했다. 박 전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이 많아 전통주를 만드는 배 회장과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한다. 조중건 대한항공 고문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을 후원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 사장은 나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와 경성고 동기다.

동종 업종에 몸담았던 의원에게 기부를 한 경우도 있다. 남승우 풀무원 사장은 풀무원 창업자인 민주당 원혜영 의원에게, 김병찬 전 KBS 아나운서는 SBS 아나운서 출신인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씩 기부했다.

이위준 부산 연제구청장은 이 지역 의원인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을 40만원씩 11차례에 걸쳐 후원했다. 조용수 울산 중구청장도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에게 매달 30만원씩 모두 360만원을 냈다. 기초의원들이 현역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경우도 30건에 달했다. 민주당 김희철 의원은 비서관으로부터 5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상임위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후원금을 내는 경우도 여전했다. 교육과학기술위인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상지학원 설립자로부터,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동아인재대학 총장으로부터 각각 500만원을 받았다.

허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