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결식 학생들 돕는‘사랑의 배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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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문자를 보내주네요. 운전 조심하고 밥 꼭 챙겨 먹으라고요. 기특하죠.”

부산 동래우체국 황성화(43·사진) 집배원은 ‘새로 생긴 딸들’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박봉을 쪼개 급식비를 보태주고 있는 중고생 5명이다. 할머니와 사는 조손 가정의 중학생, 엄마가 암투병 중인 여고생 등 어려운 집안에서도 꿋꿋하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작은 도움을 받고도 문자나 편지로 고마움을 전해오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씨는 1991년 집배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맡은 부산 동래구 명장2동 지역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웃들의 사정도 속속들이 알게 됐다. 그 가운데는 급식비가 없어 점심을 못 먹는 초등학생, 손녀딸의 교복을 사주지 못하는 할머니, 거동이 어려운 노인 등 안타까운 사정이 있는 이웃들도 많았다.

그러다 96년 점심을 거르는 초등학생에게 급식비를 보태준 게 봉사의 출발점이 됐다. 그는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줬는데 다음달에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더 딱한 아이들이 보이면 그들에게도 월급봉투를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급식비 지원이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식비를 받아 중학교를 마친 여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교복이며 신발도 사줬다.

학생들만 돕는 게 아니다. 혼자 사는 노인들 집에 들르면 식사도 챙겨주고, 한 달에 두 번씩 일부러 짬을 내 목욕도 시켜드린다. 이렇게 황씨의 도움을 받는 이웃이 20명이 넘는다. 집안일 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더 챙기는 가장에게 짜증을 낼 만도 하지만 중학생 아들은 오히려 아빠가 노인들을 모시고 목욕탕에 갈 때 선뜻 따라나선다고 한다. 그는 “남을 돕는 일을 어려서부터 경험할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좋다”며 대견해 했다. 이런 마음 씀씀이가 회사에도 알려져 황씨는 올해의 ‘집배원 대상’ 수상자로 뽑혔다. 1만7000여 명의 집배원 가운데 최고의 집배원에게 주는 상이다. 시상식은 13일 충남 천안의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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