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경제교과서, 주장보다 사실이 정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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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획재정부 노대래 차관보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경제교육지원법 제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경제교과서 개편과 관련해선 재정부의 실질적 책임자다. 따라서 그의 말은 재정부의 입장이라 봐도 된다.

그의 주장은 단순명료하다. 경제교과서는 사실만 전달해야 한다는 거다. 경제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지, 미리 만들어진 이념이나 주의·주장을 주입시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동안 현행 경제교과서의 문제점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조장하는 내용이 많다”는 지적과 “신자유주의 일색”이라는 비판이 맞서 왔다.

왜 그랬을까. 전문가들은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실을 가르쳐야 할 교과서가 선악을 가르치려 하니, 입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경제 문제를 포함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은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현대사회의 문제들은 뭔지,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은 또 뭔지, 구체적인 설명 없이 당위와 주관이 앞서 있다. 검증 받지 못한 주관과 당위가 주입식 교육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면 청소년의 경제관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제학과 경제관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위기 대응 과정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규제가 잇따르자 시장주의에 대한 반성도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에 따라 자유시장 경제의 근본적인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쉽게 결론 지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경제교과서는 이런 논쟁과는 별개다. ‘시장에 모든 걸 맡겨야 한다’는 시장 지상주의나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장 불신론을 떠나 팩트만 쓰는 것이 정답이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통화량이 지나치게 늘면 물가가 뛴다’ 같은 사실적 원리만 전달하면 된다. 관점이 엇갈리는 부분도 사실만 전달하면 편향성 시비에 말려들진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얘기할 때 존 케인스와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동시에 설명하는 식이다.

정부가 ‘균형’에 방점을 찍고 교과서 개편에 나선 것은 그래서 환영할 만하다.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어른들이 헤게모니 다툼을 하는 장소가 돼선 안 된다.

권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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