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인턴 후 채용’ 공정성 확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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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기업들이 ‘인턴 가운데 능력만 검증되면 모두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이 남았다. 2008년 여름 정유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조모(28)씨는 “당시도 올해처럼 ‘능력만 검증되면 모두 채용한다’고 인턴 모집공고를 냈다”며 “하지만 인턴으로 일하면서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잘하면 다 뽑고, 못하면 한 명도 안 뽑을 수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6주 동안의 인턴십을 마친 100명의 동기 중 정규직으로 합격한 사람은 30여 명. 조씨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속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실적이나 능력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질지도 관건이다. 배치받은 부서에 따라 평가에 편차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2008년 7월 건설업체에서 인턴으로 일한 김모(27)씨는 “한 인턴 동기는 후배를 잘 챙겨주는 분위기의 부서에 배치받았다. 멘토와 함께 프로젝트를 맡아 일하면서 후한 평가를 받았다”며 “나는 워낙 바쁘게 일하는 부서로 배치받아 멘토와 이야기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 자료 조사만 하다가 인턴 기간을 마쳤다. 무슨 기준으로 둘을 동시에 평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공채 때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히 교육을 받은 채점관이 정형화된 틀(서류-인·적성검사-면접)에 맞춰 투입된다. 그만큼 공정성 시비를 일으킬 여지가 작다. 하지만 인턴십은 다르다. 각자 배치된 부서의 부서장·멘토 등이 평가한다. 통신업체 입사 3년차 김모(27)씨는 “곧 인턴 사원이 들어올 테니 준비하라는 공지만 내려온다”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평가하라는 건지 ‘알맹이’가 없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정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인턴십 평가자를 교육해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며 “또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인턴 평가가 공정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턴십이 신입사원 공채에 준하는 채용 과정으로 진화한 만큼 준비도 ‘제대로’ 해야 한다. 인턴을 마친 뒤 입사에 실패해 다시 취업 준비 중인 성모(27)씨는 “인턴에게 평가 결과에 대해 구구절절 피드백할 필요는 없지만, 평가 내용을 납득은 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정한 인턴십은 그래서 필요하다. ‘인턴 세대’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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