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이야기꾼 - 무협 2.0 ④ 『이원연공』 백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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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백연 작가의 미덕은 끊임없는 변신 노력과 완벽주의에 가까운 집필태도다. [변선구 기자]

『이원연공』은 ‘착한’ 무협소설이다. 도검이 난무하고 주먹이 오가는 무협소설이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읽고 나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바람직한 사제관계란 보기 드문 주제를 다룬 덕분이다.

삼류무사인 이원이 고아 소년을 제자로 맞아들여 ‘연공’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제자 연공은 행실이 반듯하고 무재(武才) 또한 뛰어나다. 스승 이원이 제자를 잘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수련에 나선다. 끝내 감당을 못해 제자를 강호로 보내 경험을 쌓게 하는데…. 연공은 강호의 은원관계에 얽혀 곤란을 겪으면서 차츰 번듯한 무인으로 성장한다. 더불어 황실과 연루된 음모를 파헤치고 나라를 구한다.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는 것이 눈물겨울 정도다.

주제만 착한 게 아니다. 등장인물도 절대적 악인이 없다. 악인이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 나름 이유가 있다. 여느 무협소설처럼 살인을 밥 먹듯이 하거나, 천하를 암흑으로 몰아가는 캐릭터는 나오지 않는다.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 부모와 연인을 위하는 방식이 주인공과 다를 따름이다. 정말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자연히 절대적으로 한 편을 들기 어려워 정의니 선이니 하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이 색다른 무협소설을 쓴 이는 대구 출신의 백연(31·본명 윤선영).

“판박이 무협소설은 쓰고 싶지 않아요. 작품을 쓸 때마다 주제며 스타일, 분위기를 달리 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죠.”

그래서일까. 작품마다 작가마저 다른 느낌이다. 복수를 하느라 저지른 살인의 무게를 감당 못해 주인공이 자살하는 데뷔작 『연혼벽』은 누아르 영화를 보는 듯하고, 『벽력암전』은 막내 동생의 복수극이되 전개가 단순하지 않다. 액자식 구성을 취했다. 또 『무애광검』은 변방으로 쫓겨간 평범한 무인이 출세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와, 독자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번갈아 쓰고 있어요.”

두 번째 작품인 『이원연공』은 지금은 보기 힘든 정통무협의 낭만을 되살리고 싶어 쓴 작품이란다.

“문체도 일부러 번역투를 사용했더니만 홍콩의 김용 작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실은 대만 작가 양우생을 좋아해서 그의 캐릭터를 오마주하기도 했는데….”

어눌한 말투지만 할 말은 다한다. 닥치는 대로 읽은 책 덕분에 팩션에 가까운 그의 작품은 공허하지 않다. 그는 진순신의 중국사 관련 서적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기억했다. 부모가 무협소설을 좋아해 어릴 때부터 집에서 무협을 읽었고 중학교 때부터 습작을 했다니 무협작가로는 행복한 환경을 누린 셈이다. 데뷔는 평범했다. 대학 때 인터넷 무협소설 사이트에 연재를 하다 출간을 하게 됐고, 졸업 후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뒀을 때 출판사 제의로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일이다.

“두 달간 거의 감금생활을 하다시피 하면서 글을 썼죠. 워낙 쓰는 속도가 느려서….” 지금도 하루 10시간 이상 자판과 씨름하지만 원고지 20매 정도 쓰는 게 고작이란다.

“모니터를 멍하니 보면서 궁리를 많이 하죠. 장면과 대사를 머릿속에 그린 뒤 시점이나 날씨까지 바꿔보다가 틀이 잡히면 집필하고 일단 쓰면 거의 고치지 않아요.”

일종의 완벽주의자인 셈이다. “작가생명의 끝날 것”이란 비판에도 ‘착한 무협’으로 재미를 잡은 뚝심도 있다. 신세대 창작무협을 이끌 대표주자 중 한 명이란 평가가 타당하게 들렸다.

글=김성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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