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26>예술과 홍보는 다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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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호 05면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홍길동’을 봤다. 만든 곳은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 처음 들어본 제작사였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이전까지 뮤지컬을 만들어 본 이력은 거의 없었다. 작곡·연출·극본 등 창작진의 경력도 마찬가지였다. 의심 많은 기자들, 이렇게 경험 없는 제작사가 대형 뮤지컬을 만든다고 하면 우선 곱지 않게 보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썩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 말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채롭게 변화하는 무대 세트는 꽤 짜임새 있었고, 클래식 선율에 바탕을 둔 음악도 나름 격조가 있었다.
이 얘기가 뮤지컬 ‘홍길동’의 완성도가 빼어나다는 건, 결코 아니다. 기대를 안 한 것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지,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홍길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이를테면 하늘을 붕붕 날아다닌다거나 아니면 탐관오리를 무찌르는 통쾌함 등은 없었다. 스토리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었고, 서민과 양반의 대결이라는 평면적 구도로만 점철돼 갔다. 게다가 우유부단하다 못해 찌질해 보이는 홍길동의 캐릭터는 전혀 매력 없었다. 차라리 악역이지만 카리스마 있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는 홍길동의 형 ‘홍일동’이 더 주인공처럼 보였다.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전남 장성군이었다. 장성군이 얼마나 유서 깊은 곳인지, 인심 후하고 지역에서 나는 곡물은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기 바빴다. 작품은 장성군에서 25억원의 예산을 집어넣어 만든 ‘관(官) 뮤지컬’이다. 홍길동을 장성군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알리면서 양수겸장으로 지역 홍보도 하고 싶은 심정, 이해할 순 있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하면 민망하다.
작품의 결정적 패착은 음악의 삽입이다. 음악 자체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다. 뮤지컬의 퀄리티는 사실 극과 음악의 자연스러운 이음새에서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근데 ‘홍길동’에선 온갖 심각한 표정과 대사로 실컷 할 얘기를 다 한 다음, 극이 마무리될 때쯤에야 꼭 노래가 나왔다. 극-노래의 패턴으로만 일관하다 보니 작품은 단조로웠고, 노래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토로하는 풍의 격정적인 선율로만 대부분 채워졌다. 이게 과연 뮤지컬일까. 그저 연극에 간간이 음악을 구겨 넣은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뮤지컬 ‘홍길동’의 실패는 극장인 우리금융아트홀로서도 난감한 일이다. 극장은 역도경기장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지만, 개관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유료 점유율이 고작 10%대였고 두 번째작 ‘선덕여왕’은 급조한 티가 물씬 풍겼다. 이어 ‘홍길동’까지, 이 정도면 3연타석 삼진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체육 시설을 고친 탓에 음향이 떨어진다는 등 태생적인 한계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금융아트홀의 작품 라인업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미 업계에선 “서울에서 가장 후진 공연장으로 꼽히던 ‘한전아트센터’의 바통을 ‘우리금융아트홀’이 이어받았다”란 얘기가 파다하다. 극장 이름에 ‘우리금융’이란 말이 들어간 건 리모델링하는 데 우리금융지주가 30억원의 돈을 보탰기 때문이다. 이렇게 엉망인 작품이 계속 올라가면 과연 ‘우리금융’이란 브랜드에 도움이 될까. 지방자치단체들도 작품 완성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관 뮤지컬’을 만들어낼까. 지켜볼 일이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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