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지금 여자들끼리 지지고 볶을 때가 아니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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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여자는 왜 다른 여자를 훔쳐볼까
에바 메셰데 지음
안상임 옮김, 더난출판
255쪽, 1만2000원

혹시 제목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세상 통념에 따르자면 ‘여자는 왜 다른 남자를 훔쳐볼까’가 더 그럴듯해 보였다. 지은이가 남자려니 했다. 남성 전유물로 여겨져 오던 자리들을 꿰차는 여성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현실에서 모계사회의 재림을 음해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싶어서다. 단짝 친구라면서 인정사정없는 경쟁을 벌이는 소녀들, 여자 친구의 여자 친구를 겁나게 질투하는 여성들, 전업주부와 직업여성 사이에서 아이 교육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엄마들…. 여성을 적으로 여기며 못난 짓을 하는 여성들의 천태만상, 으르렁대며 상대 여성을 물어뜯는 사례는 징그러울 정도로 실감난다.

예상은 빗나갔다. 필자는 여자이자 엄마였다. 독일 뮌헨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기자이자 인기 칼럼니스트로 남녀 심리에 두루 능통한 여성 문제 전문가다. 이쯤 되면 자중지란이라 할 만한데, 읽어나갈수록 ‘역설의 묘법’이 드러난다. 여자가 여자를 향해 가장 쓰리고 아픈 부분을 할퀴고 한 방 먹일 때는 끈끈한 자매애가 있지 않고는 힘들다. ‘여자들은 이래서 잘못 됐어’ ‘여성이 남성보다 못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야’라고 조목조목 들이대는 속내는 따로 있었다. 여성 내부의 적을 향해 거침없이 던지는 쓴 소리는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란 대목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고가 났을 때 달려오는 구급차와 같던 단짝 여자친구에게 다른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여성들은 절망감과 함께 강한 질투를 느낀다. 일러스트 유혜승. [더난출판 제공]

“여자들 사이의 경쟁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여자들만 인식하고 있는 문제점, 바로 다함께 먹을 수 있을 만큼 케이크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 여자들이 동등한 교육과 경력에도 불구하고 돈을 적게 버는 한, 이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올바른 길을 향한 경쟁에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자유로운 결정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남자들과 싸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과 자녀 양육, 낮은 임금 등 여성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두고 서로 싸우며 전통적 가치를 찾자고 부르짖기 전에 말이다.”

책 속에서 다양하게 인용되는 각종 사례와 연구 결과는 현재 한국 상황과 좀 다른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전업주부들에게 ‘생계형 매춘’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는 말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독일 연방 노동보호 및 노동 의학국이 낸 ‘집단 따돌림 사례보고서’에서 따돌림을 받는 직장인의 75% 이상이 여성이란 결과도 기이하다.

하지만 ‘여자, 그 은밀하고 치열한 경쟁에 대한 심리보고서’란 부제처럼 여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싸움에 관한 통찰은 고개를 끄덕일 만큼 생생하다. 남자 독자들이 읽는다면 여자 친구, 또는 여성 직장 동료를 이해하는 데, 또는 제압(!)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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