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미국의 선택] 2.강경 외교 변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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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는 '부시 독트린'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집권 1기엔 힘의 우위에 바탕을 둔 일방주의 대외정책과 잠재적 위협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밀어붙였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벌였고 북한.이란 등과 갈등 수위를 높였지만 동맹국과 유엔의 간섭은 일절 배제했다.

부시는 이번에 4년 전보다 높은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가 과거의 일방적.공격적 외교정책을 이어나갈지, 좀더 온건한 노선으로 변화를 꾀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유럽과 중동권의 회의론자들은 "지난 4년간의 외교정책에 대해 국민의 신임장을 받은 만큼 더욱 강력한 노선을 취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시 집권 2기엔 이란과 시리아가 '손 볼 대상'으로 집중 공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강하다.

이런 회의론의 배경에는 불투명한 이라크 처리,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무시와 지나친 친 이스라엘 정책, '부시가 새로 눈뜰 일이 있을까'하는 의구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전망은 다르다. 단기적 성과보다 역사적 평가에 신경쓰며 협상 위주의 원숙한 외교를 구사하리라는 기대가 높다. 미국 대통령은 집권 2기엔 온건 성향을 띠는 경향이 있는 데다 지난 4년간의 일방주의 노선으로 겪은 시행착오를 부시 스스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특히 선제공격 독트린은 이라크 공격에서 미국 군사력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실질적으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리란 분석이 유력하다.

무엇보다 부시는 프랑스.독일과의 갈등으로 누더기가 된 대서양 양안의 동맹 관계를 복구하려는 노력을 적극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부시 2기 행정부의 최대 과제로 유럽 등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을 꼽고 있다. 케리 당선에 기대를 걸고 부시와의 대화를 기피해 온 프랑스와 독일도 앞으로 4년 더 미국과 대립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당선 확정 직후 축하 서한을 보내 "향후 양국의 협력은 대화와 상호존중 정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부시는 유럽이 미국의 우위를 인정해야만 동맹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집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부시의 입장 변화는 유럽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일 것이라는 말이다. 심할 경우 유럽에서 반미 감정이 강화돼 "유럽 자체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대립적 사고가 팽배할 수 있다.

대 중국 관계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중국과 기왕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할 전망이다. 중국 역시 부시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 문제 등에서 언제든 잠재적인 갈등이 폭발할 여지가 있다.

헤리티지 재단의 발비나 황 연구원은 "부시 2기 행정부가 유럽.중국 등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지는 이란 처리 과정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부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에 프랑스.독일.러시아의 협조를 관철시켜 이라크 문제를 처리할 때와 달리 일방주의 방식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스 홉킨스대 돈 오버도퍼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부시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더 강경한 대외정책을 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히려 강경한 이미지를 지렛대 삼아 중동이나 북한 등 갈등지역에서 대타협을 이뤄낼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반공주의 노선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중공과의 대화를 성사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이란 얘기다.

문제는 미국에 대한 테러 등 외적 변수다. 오사마 빈 라덴이나 이라크를 거점으로 한 테러 조직이 미국 공격을 감행할 경우 미국은 중동에서 공세적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아시아에서도 군사적 역할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동맹국들은 반(反)테러 전선에 더 강력히 발걸음을 맞추라는 요구를 미국에서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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