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벌고 귀신 쫓고” 좁은 땅서 풍수 따지는 홍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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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홍콩 각 은행의 본사와 대표 건물이 몰려있는 센트럴 지역. 앞장서 ‘건축물 투어’를 이끌던 에스더 펑(Esther Y P Fung)이 한 조형물 앞에 서더니 퀴즈를 냈다. “ 헨리 무어가 만든 이 작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청동 조각은 평소 헨리 무어가 즐겨 만든 사람 몸을 닮았다.

누군가 ‘바디(body)’라고 외치자 에스더는 고개를 저었다. “숫자 8을 형상화한 것 아닐까요?”란 답에 에스더는 ‘빙고!’를 외쳤다. 중국인이 재물과 행운의 상징으로 아라비아 숫자 8을 좋아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세계적인 조각가 헨리 무어(1898~1986)는 중국인이 환경조형물을 의뢰하자 ‘8’을 만들어서 보냈고 건물주와 시민들은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홍콩 사람들은 건물이나 조형물을 세울 때 오래 살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지형이나 물건에 집착한다.

우리나라에서 묘지나 큰 집을 지을 때 풍수를 따지는 것처럼, 홍콩은 좁은 땅 안에서도 풍수를 꽤 따진다. 국제도시 홍콩에서 웬 풍수냐고 고개를 젓던 이들도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홍콩관광진흥청이 진행하는 ‘풍수 강연’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건물이 들어설 땅의 물·불·흙·나무(水火土木) 등을 고려하고, 설계나 디자인도 나쁜 귀신을 쫓고 복을 가져오는 형상을 따른다. 건축가 로이 류(Roy Liu·가백 건축사 사무소 수석설계사)는 “고층에 솟아 있는 칼이나 각진 도형물이 상대 건물을 위협하는 것이나 나쁜 기운을 자르기 위한 일종의 부적이란 말이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런 말이 돌 만큼 홍콩 사람들이 건물을 지을 때 정성을 다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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