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올 가을·겨울, 스타일을 새로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자인의 최고 정점은 ‘패션’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빨리 변화하고 가장 많은 상품을 내놓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영감을 찾고, 디자인을 해서 옷을 만든다. 그렇게 완성된 옷을 런웨이에 올리는 순간, 올해의 ‘트렌드’가 만들어진다. 서울패션위크를 대표하는 기성디자이너와 서울패션위크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신진디자이너를 만나 2010 가을·겨울(이하 FW) 트렌드와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자이너 이상봉

1960~70년대 복고풍에
리본 디테일로 도시적 느낌 살려

디자이너 이상봉을 만난 것은 그가 패션쇼를 위해 모스크바로 출국하기 하루 전인 지난 26일이었다. 이달 초 파리패션위크를 마치고 귀국해 서울패션위크를 앞둔 상태였다. 글로벌화란 표현이 그를 두고 하는 말일 정도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빠듯한 스케줄이다.

그는 파리·모스크바·뉴욕 등에 진출한 글로벌 디자이너다. 하지만 ‘디자이너 이상봉’의 베이스는 항상 ‘메이드 인 코리아’다. 그는 항상 한국에 본거지를 두고 움직인다. “파리에서 활동하고 모스크바에서 쇼를 해도 나는 한국 디자이너입니다. 해외에 진출한 일본의 디자이너들을 봐도 베이스는 100% 일본에 두고 있어요. 기업이 공장을 국내에 두느냐, 국외에 두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가 붙은 옷은 곧 한국의 문화와 산업을 대표합니다.” 그런 그에게 서울패션위크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가능성이죠. 서울패션위크가 꾸준히 건재하다는 건 가능성이 주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패션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겐 미래이기도 하고요.”

그는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컬렉션 대신 패션페어를 준비했다. 파리·모스크바에서는 자신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의미의 컬렉션을, 서울패션위크에선 프레스·바이어와 가깝게 만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쇼의 형식으로 선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당일 그는 모스크바와 서울패션위크에 각각 올릴 옷을 제작하느라 분주했다. 같은 시즌이어도 컬렉션과 페어가 열리는 각 도시의 특성에 맞게 컨셉트를 따로 잡고 옷을 제작해야 한다. 때문에 작업량은 평소의 3배가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들이 무대에 올려지면 그것을 바탕으로 트렌드가 만들어지게 된다. “트렌드만 생각하면 쇼를 할 수 없어요. 신인에게 트렌드는 교과서지만 기성디자이너에겐 독이 될 수 있죠. 트렌드를 뛰어넘는 예측이 필요해요. 어떤 컬러와 소재, 실루엣이 나올지 말이죠.”

2010년 FW 무대에 오른 이상봉의 옷은 1960~70년대의 복고 느낌과 도회적인 시티 웨어를 동시에 보여준다. 런웨이에서 바로 거리로 나가도 무방할 스타일이 많아졌다. 여기에 기존의 이상봉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강렬한 스타일이 조금씩 가미된 정도다.

그중 리본을 재해석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리본의 실루엣을 느낄 수 있는 패턴과 지퍼 디테일 등이 펑키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상봉만의 리본 패턴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끼나 벨트·헬멧 등에서 그 느낌이 극대화된다. 플라스틱에 새겨진 패턴은 자동차 도색 전문가에게 맡겨 일일이 손으로 그린 것이다.

붉은 색의 퍼(모피)를 이용한 원피스는 파리의 르몽드 지에 실린 옷이다. “패션 디자이너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날씨 때문인지 퍼와 니트를 많이 사용했죠.” 한국적인 소재도 잊지 않았다. 원피스와 헬멧 등에 자개를 일일이 붙여 패턴을 만들었다.

화려하고 강렬하지만 여성스러운 실루엣,한국적인 모티프를 잃지 않는 것이 이상봉 옷의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옷은 뮤지션 레이디 가가와 리한나, 그리고 모스크바의 국민 가수인 라데지다 까데시바 등 전 세계 스타들에게서 사랑 받고 있다.

“이번 모스크바의 패션쇼 역시 한글과 키릴문자와의 만남, 김소월과 푸시킨의 만남이 주제에요. 한국이라는 베이스, 혹은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는 1985년도 데뷔 이후 간직해온 생각입니다. 제겐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려야 하는 책임이 있어요. 그 일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바로 제가 받은 관심을 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김선호·박정은
‘데드 트리’를 테마로 스포티즘 함께 녹여내

“서울패션위크는 국내외 시장에 그라운드웨이브(Groundwave)를 알릴 기회잖아요. 완성도 높은 옷을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죠.” 동갑내기 디자이너 김선호·박정은의 말이다. 이들의 옷은 손맛이 느껴진다. 비대칭 라인의 코트, 여밈선에 절개가 들어간 정장 베스트, 소매의 사선 디테일이 눈에 띄는 가죽 재킷 등이 그러하다.

두 사람은 에스모드 서울의 동기생으로 만났다. 취향이 비슷해 쉽게 친해졌다. 남성복 디자인을 전공한 김선호와 패션 마케팅을 선택한 박정은이 의기투합한 것은 2008년이다. 원하는 옷을 만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해 FW시즌, 두 사람은 미니멀한 스타일의 남성복 브랜드 그라운드 웨이브를 론칭했다. 그러나 신진 디자이너가 의류매장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들은 직접 옷을 들고 백화점·편집매장 등의 바이어를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갤러리아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2주간 매장을 열 기회를 얻었다. 이 기간 동안 박정은은 “선택에 신중한 남성 소비자들의 쇼핑 패턴을 배웠다”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팝업 스토어가 끝난 후 이들은 ‘해외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자신의 옷을 팔고 있을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두 사람은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기회가 왔다. 지난해 6월 파리의 남성복 페어인 랑데부 옴므의 2010 봄여름(이하 SS)시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올 1월에도 2010 FW시즌에 참가했다. 그 곳에서 10꼬르소꼬모 서울의 바이어를 만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10꼬르소꼬모와 함께 자체 브랜드 의류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2010 SS시즌에 처음 참가한 서울패션위크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시간이었다. 이번 FW시즌은 그라운드웨이브를 알릴 기회이기도 하다. 박정은은 “지난 2~3시즌에 서울 패션위크를 찾는 해외 바이어와 프레스가 늘고 있다”며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우리 색을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끊임없는 도전으로 해외진출의 길이 열릴 것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즌에는 ‘데드 트리’를 테마로 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FW시즌 남성복의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인 스포티즘을 브랜드에 맞게 녹여낸 작업이었다. 김선호는 “과장되지 않은 디테일과 실용적 디자인을 중시했다”며 “지나치게 트렌디해서 10년 지나면 촌스러울 옷보다 20년 지나도 손이 가는 옷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디자이너 이승희
다양한 색·구조 사용해 고급스러운 여성미 살려

이승희는 이번 시즌 두 번째로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했다. 지난해 3월 자신의 브랜드 ‘르이(Leyii)’를 론칭했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도했다. 지난 2010 봄·여름 시즌 런던패션위크는 ‘디자이너 이승희’를 알린 첫 번째 장이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의류를 공부한 그에게 런던은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개성을 중시하는 유럽시장에서 가능성을 봤다”며 “바이어나 다른 디자이너와의 대화를 통해 디자인이 더 자유롭고 과감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연이은 2010 FW시즌 참가로 이탈리아 바이어와 계약을 맺는 성과도 거뒀다.

서울패션위크는 이승희가 마음껏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 자리다. 런던패션위크가 판매에 중점을 둔다면 서울패션위크는 브랜드의 색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이번 시즌에는 ‘의복실험실’을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였다. 옷의 기본 패턴에 다른 패턴의 반복·움직임·드레이핑을 더해 재미있는 옷을 만들고자 했다. 슬림한 H라인 원피스에 다른 패턴의 원피스를 덧붙이거나 시폰 소재에 패턴을 프린팅해 사용했다. 그가 컬렉션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이미지다. “쇼 전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어야 한다. 컬렉션은 신진 디자이너가 자신의 특징을 세계 각국의 바이어와 프레스에게 알리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해외 바이어와의 계약을 기대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바이어·프레스·대중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패션위크잖아요. ‘디자이너 이승희의 색’을 꾸준히 지켜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겠죠.”

< 글=이세라·신수연 기자 slwitch@joong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