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미국 대선과 파장' 기획 시론 1.

미국, 패권주의 넘어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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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각국에서 특정 후보에 대해 지지성명을 발표했고 선거 참관인과 감시단을 파견했다. 전세계가 미국 대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하나가 된 느낌이다. 이는 세계화.정보화의 덕이기도 하다. 이미 미국은 미국만의 국가가 아니고 미국의 대통령은 전세계의 지도자다. 국제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극시스템으로 형성되고 미국은 초강국으로서 국제적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미국이 자국의 패권적 이익을 넘어서 국제사회의 평화질서를 위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2001년 9.11 테러는 미국의 패권과 일방주의적 외교에 정면으로 도전한 상상을 초월한 사건으로 세계 역사상 테러전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과 뉴욕을 공격했다는 사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의 하나고, 미국은 바로 전쟁에 돌입했고 미국인들의 삶은 테러 공포에 의해 상당히 변모했다.

9.11 테러 이후 처음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는 대(對)테러 전쟁의 과정 속에서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대테러 전쟁을 안정적으로 수행해 미국 본토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좀 더 신뢰가 가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2000년 선거에서 부시 후보와 고어 후보의 백중지세 결과에 비하면 이번 선거는 부시 대통령의 승세가 현재까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함께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공화당이 득세해 상.하원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미 국민의 보수화 현상이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이라크 전쟁과 대테러 전쟁 등의 안보 이슈와 사회경제적인 이슈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보수.진보의 세력갈등이 존재하고,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하면 월남전 때와 같은 갈등양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의 장점으로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에는 국민들의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고 다음 선거를 기다리면서 당선 대통령이 대테러 전쟁에서 승리해 미국을 보호해 주기를 기원하리라 생각된다.

신임 미 행정부의 핵심 과제는 이라크 전쟁의 마무리,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조치, 대테러 전쟁의 수행, 거대한 중국과 유럽연합(EU)의 부상에 대한 대응 등이다. 외교전략으로 패권주의적 일방주의에 국제협조적 다자주의를 가미할 가능성도 있다. 21세기 신국제질서는 미동맹네트워크와 테러집단네트워크, 중립국가군으로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테러전쟁이 장기화하면 미 동맹과 테러집단은 쇠잔하고 중립적 위치의 EU나 중국이 새롭게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놀라운 개방성과 경쟁성을 가진 초강대국 미국이 쇠퇴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우나 대제국의 쇠망은 역사적 경험에 따라 과도한 팽창과 지출에 기인해 왔기 때문에 테러전쟁의 장기화는 미 제국의 쇠망에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한반도 주변 강대국인 일본.러시아.중국의 지도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다. 부시 대통령의 6자회담 우선정책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있다. 부시 재선이 확정된다면 핵심 파트너로서의 미.일 동맹관계와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미.중, 미.러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중국의 안정적 경제발전, 러시아의 대테러 정책을 미국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정책도 계속 추진될 전망이다. 한국이 6자회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주변 4강과의 정보교류와 국제협조에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미국이 주변강대국과 함께 한반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책임의식을 갖기 바란다. 도덕적인 측면을 넘어서 현실적으로 동북아의 평화안정과 테러전쟁을 포함한 세계평화를 위해서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