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균형 못갖춘 건강보험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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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의약분업.건강보험 등을 둘러싸고 정책결정 및 집행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며칠 전 보건의료정책 연구자들이 모인 보건행정학회에서는 의약분업 등의 실패에 대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성급히 실시하고,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책연구 결과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데서 기인했다는 지적들이 제기됐다.

증거에 입각한 정책(evidence-based policy)의 도입과 결정이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의 정책수립과 집행 풍토도 달라져야 함을 거듭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입맛 맞는 연구만 원하는 정부?' (5월 29일자 사설)는 객관적 증거보다 정치 분위기에 편승해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 태도에 대한 적절한 지적이라고 판단된다.

기획취재 기사인 '실패한 국책사업 다시 실패하지 않는 길은…' (5월 30일자 5면, 31일자 5면) 역시 정책실패의 원인을 사례 중심으로 심층 분석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기사였다. 정책실패를 막을 수 있는 방안 중에서 정책 평가와 실패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정책 보완이란 목적 외에도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건강보험의 재정파탄에 대한 감사원 특감은 공식적으로 정책실패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특감 결과 발표(5월 29일자 1면)는 정책실패의 책임을 정책의 어느 단계에서부터 따질 것인지, 그리고 누구에게까지 물을 것인지를 놓고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겨주었다.

특히 의약분업 실시와 수가인상이 정치적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정책실패의 책임을 실무공무원에게만 물은 것과 관련해 " '깃털' 로 끝난 의료대란 문책" (5월 30일자 사설)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향후 정책수행에 미칠 부작용을 고려할 때 타당한 지적이었다.

감사결과에 대한 논란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일련의 기사들(5월 29일자 3.4.30면, 31일자 31면) 역시 감사결과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파탄이 의약분업 실시와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점에서 정책 도입과정, 즉 의약분업 실시의 타당성을 함께 검토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치적 결정이라는 식으로 비켜간 채 결과인 재정파탄에만 초점을 맞춘 감사의 한계를 함께 지적했더라면 하는 점에서 아쉬움을 갖게 한다.

또한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대책' 관련 기사(6월 1일자 1, 3면)는 국민부담 증가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재정대책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을 견지하지 못했다. 부담 증가를 좋아할 소비자는 없겠지만 건강보험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선 이해주체들의 고통분담이 불가피하며, 정부 부담도 궁극적으로는 국민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정부 책임만을 강조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번 기회를 건강보험체계가 안고 있는 '저부담-저수가-질 낮은 서비스' 라는 부실의 악순환을 떨어내는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 각 이해주체들이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 또한 정부방안이 이러한 취지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는지를 짚어내는 것이 성숙한 보도태도라고 본다.

아울러 당장 7월부터 실시하겠다는 차등수가제 등은 실행 후 예상되는 혼란에 비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해 또 다른 정책실패가 우려되는바, 이 대책들의 타당성이 공론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이선희 <이화여대 교수.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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