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보다 앞서 함미 위치 발견 ‘해덕호’ 선장 장세광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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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밤 백령도 해상에 떠있는 광양함에서 불을 밝힌 채 해군 해난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백령도=김태성 기자]

“제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더 중요한 것은 빨리 구출해 내는 일이겠지요.”

백령도 특산물인 까나리를 잡는 배가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함미 위치를 찾아냈다. 백령도 장촌리 어촌계 소속 까나리 배 6.5t짜리 해덕호다. 장세광(35·옹진군 백령면 장촌리·사진) 선장은 29일 오전에도 포구 한쪽에서 노란색 까나리 그물을 깁느라 바빴다. 천안함 함미가 가라앉은 곳이 드러나면서 수색구조활동은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장 선장은 28일 아침 옹진군 수산과로부터 천안함 수색활동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같은 마을의 어선 2척과 함께 오후 4시까지 작업해 달라는 것이었다. 바다로 나가니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장촌리 어선 3척은 해군 함정과 함께 천안함이 폭발한 연화리 앞바다로 이동했다. 어군탐지기를 켠 채 구역을 나누어 바다를 샅샅이 뒤져 나가기 시작했다. 날씨도 날씨지만 하루 종일 어군탐지기를 지켜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았다. 그는 “영화나 TV를 보면 어군탐지기에 물체가 포착될 때 ‘삐-’ 하는 소리가 나지만 우리 배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정된 작업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소득이 없었다. 해군의 요청도 있고 이왕 시작한 김에 해질 때까지 계속하기로 했다. 오후 5시쯤 해덕호 어군탐지기의 녹색 화면에 이상 물체를 표시하는 점이 잡혔다. 장 선장은 삼마니들이 ‘심 봤다’고 외칠 때의 심정을 느끼면서 해군에 “천안함을 찾았다”고 연락했다.

해덕호의 연락을 받은 해군은 이날 오후 사고 해역에 도착한 기뢰 제거함인 옹진함에 포착된 물체의 탐지를 의뢰했다. 오후 10시쯤 옹진함의 음파탐지기는 해덕호가 포착한 것이 30m 크기의 천안함 함미인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침몰 위치는 백령도 서남방 2.7㎞에, 수심 45m 해역이었다.

천안함 사고 해역은 백령도 까나리 잡이 배들에는 익숙한 물길이다. 백령도는 요즘 포구마다 까나리 출어 준비가 한창이다. 어민들은 천안함 사고로 제철을 놓칠까 내심 걱정이다. 그러나 장 선장은 포구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해병들을 가리키며 “젊은이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까나리가 대수겠느냐”고 했다.

백령도 주민의 주소득원인 까나리는 4월 초부터 5월 말까지가 제철이다. 장촌리에만 12척의 까나리 배가 있으며 장 선장은 한해 평균 150통의 까나리젓을 생산한다. 천안함 함미 확인 작업에 수훈을 세운 해덕호의 어군탐지기는 정작 까나리 잡이에는 별 쓸모가 없다고 한다. 까나리가 회유성 어류이기 때문이다. 대신 6월부터의 어초 낚시철이 되면 우럭·놀래기 등이 많이 서식하는 암초를 찾는 데 큰 활약을 한다.

백령도=정기환·강기헌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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