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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엄청 마셔댄 소크라테스, 마르크스 … 그들에게 술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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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철학’이라 해서 공연히 주눅들 필요가 없는 책이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아닌가. 제목대로 술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담았다. 소크라테스에서 테어도어 아도르노까지, 서양철학자들의 술에 관한 언급과 일화를 담아낸 덕분에 애주가들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흥미로운 대목이 적지 않다.

술을 엄청 마신다고 해서 반드시 무절제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불변의 명철함을 남길 수 있음을 보여준 철학자가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사람들이 어떻게 술을 마셔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취하지 않고 마실 수 있는지 물을 정도로 술을 많이, 그리고 자주 마셨지만 아무도 그가 술에 취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건 그의 수제자인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이야기다.

반면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뉴는 술 취함이란 ‘몰상식하고 난폭한 악행’으로 이어지며 정신적인 면이나 관대함도 없고, 성실함이나 신중함 또는 과학과도 섞이지 않는다고 보았다. 아울러 “음미하기보다는 목 아래로 내려보내기 위해 아무 술이나 마시는” 독일인들을 경멸했다.

지은이에 따르면 공산주의도 술에 빚지고 있다. 마르크스는 ‘라인 신문’ 편집장으로 있을 때 포도경작자들의 비참한 상황을 지면에 폭로한 적이 있으며 이런 의식이 공산주의 사상에 접목되었을 것이란 근거에서다. 마르크스 자신도 학창 시절 “수업을 빼먹고 종종 취할 때까지, 그리고 주머니의 돈이 바닥날 때까지” 마시곤 했으며,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자 연맹’의 지원자를 뽑을 때 흠뻑 취한 채 입회시험을 실시했다고 한다.

단순히 술에 관한 명언이나 일화만이 아니라 배경 설명, 사회적 의의 등을 담았기에 책은 유익하기도 하다. 단 이탈리아의 철학교수가 쓴 탓인지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곱씹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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