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암 투병하며 보험사와 싸운 어머니를 대신해 서명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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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건강보험 개혁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미국 역사상 최초로 국민의 95%가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는 사실상의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렸다. 이날 상원은 하원이 통과시킨 건보 개혁법 수정안 심의에 들어갔다. 이번 주 내에 수정안이 상원을 통과하면 오바마의 건보 개혁 드라마가 마무리된다.

◆백악관에서 건보 개혁법 서명식=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건보 개혁법 서명식에서 오바마는 “암과 마지막까지 싸우면서도 보험회사와 시시비비를 따져야 했던 나의 어머니를 대신해 이 개혁 법안에 서명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오바마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22개의 펜을 번갈아 사용했다. 백악관은 “건보 개혁법안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서명한 펜을 기념품으로 소장하도록 선물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오바마의 서명 펜은 조 바이든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 건보 개혁에 앞장섰던 고(故)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부인 빅토리아 케네디 등 19명에게 전달됐다. 남은 3개 중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갖고, 2개는 박물관에 영구 보관된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주요 법안 서명 때 여러 개의 펜을 사용한 뒤 법안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펜을 선물하는 것은 관례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경우 1964년 민권법에 서명할 때 75개의 펜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 또 말 실수=잦은 말 실수로 유명한 바이든은 서명식에서 다시 명성을 확인시켰다. TV로 생중계된 서명식에서 먼저 마이크를 잡은 바이든은 오바마의 노력을 칭송한 뒤 오바마에게 다가갔다. 그는 오바마의 귀에 대고 “이것은 대단한 일(This is a big fXXXing deal)”이라고 속삭였지만 켜져 있던 마이크를 통해 그 내용이 그대로 나갔다. 인터넷 등에 바이든 발언 영상이 퍼지면서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CNN 앵커인 릭 산체스는 “우리 대부분이 어머니 앞에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 말을 부통령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가 반대 앞서=여론조사기관 갤럽과 일간지 USA투데이가 22일 공동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9%가 건보 개혁법 통과에 대해 “좋은 일”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대는 40%에 그쳤다. 민주당 지지자의 79%가 찬성, 공화당 지지자의 76%가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은 반반씩 의견이 갈렸다. 여전히 건보 개혁에 대한 여론이 정치적 견해에 따라 분열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원, 수정안 심사 시작=이날 상원은 지난 21일 하원을 통과한 건보 개혁 수정법안에 대한 심사에 돌입했다. 상원은 20시간에 걸친 토론을 거쳐 이번 주 내로 표결에 들어갈 예정이다. 수정안 통과는 100명의 상원 의원 중 과반수만 확보하면 된다. 이변이 없는 한 친민주 무소속 2명을 빼고서도 57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의 의도대로 진행될 것이 확실시된다. 공화당 측은 이날 상원에서 “법안 반대 투쟁이 아직 끝난 게 아니다”며 강력 반발했다.

◆14개 주 위헌 소송=공화당 우위의 14개 주 검찰총장이 미 연방법원에 건보 개혁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냈다. 정부가 개인의 건보 가입을 강제하는 게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백악관은 대부분의 주에서 자동차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듯 강제적 건보 가입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 법무부 찰스 밀러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 법이 합헌이라고 확신하며 법정에서도 이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너선 시겔 조지워싱턴대 법대 교수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방법과 주법이 충돌하면 연방법이 이긴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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