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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자본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시민단체는 정부 포섭대상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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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본사 주최로 ‘새 공동체 건설을 위한 통합 콘퍼런스’세미나가 지난달 29~30일 강원도 평창 보광휘닉스파크 호텔에서 열렸다. 이틀 동안 열린 이 세미나에서 23개 단체 150여명의 참가자가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김상선 기자

최근 사회가 반목과 대립, 불신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념.세대.계층 간 대립이 심화하면서 사회 공동체가 해체 위기에 이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를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할 순 없을까. 21세기 새로운 사회의 공동체 비전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시민사회연구소는 지난달 29~30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파크에서 8개 학회 및 포럼, 15개 시민사회 단체 등 23개의 학회.단체와 공동으로 '새 공동체 건설-한국의 사회자본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를 주제로 콘퍼런스를 열었다. 학자와 단체 관계자 등 150여명이 모여 한국사회의 방향을 두고 의견을 나눴다.

*** 열린사회로 가려면

한국정치학회와 한국행정학회가 주관한 제 1.2분과에서는 주로 우리나라 시민사회 조직의 특성과 조직 간 갈등해소를 위한 대안이 논의됐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열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단체의 역할이 크지만 아직 그 역할을 다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정치학회가 주관한 제1분과에서 목원대 장수찬(행정학)교수는 "(짧은 기간에 달성한 눈부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선진국 형의 열린 시민사회로 들어가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그 근거로 우리나라 사회조직이 지니고 있는 대외신뢰의 이중성을 들었다. 열린 시민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조직 및 단체들은 집단 내부적으로는 비교적 튼실한 신뢰구조를 쌓고 있지만 외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신뢰의 이중성을 가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국가 권력의 도덕성이 떨어지면서 국민 사이에 사회자본을 깎아먹는'나쁜 감정'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올바른 사회자본을 쌓으려면 정치의 정상화와 함께 대내외적인 신뢰의 이중성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한데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이 다양한'자원 결사체'활동에 참여해 시민연대 활동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그는 제시했다.

한국행정학회가 주관한 제2분과에서 명지대 임승빈(행정학)교수는"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사회단체들의 갈등은 시민단체들을 포섭 대상으로 여겨 자율성.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정부에 1차적 원인이 있지만'패배의 룰'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민단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스스로 자기성찰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열린 사회 진입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임 교수는 대안으로 생명의 숲 가꾸기, 경제살리기 등 범 국민캠페인과 연대운동을 해 나가는 한편 자체 교육을 강화해 단체 내 지도자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임봉수 기자

*** NGO의 자율성

한국 NGO학회가 주관한 3분과 토론에서 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는 'NGO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유용성과 한계'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실적으로 NGO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부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NGO 스스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균형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NGO는 회원의 회비와 기부금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했다. 활동의 자율성과 재정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NGO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NGO가 정부의 프로젝트 대행자 또는 공공서비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박 교수는 경고했다. 정부로부터의 개입과 규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그러나 현재로선 정부의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NGO 재정 가운데) 회비가 전체의 50%를 넘는 것은 쉽지 않고, 한국의 경우도 정부 지원금이 (NGO) 전체 재정의 20~30%를 차지하고 있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 지원을 지원과 비지원이란 이분법적 사고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박 교수의 관점이다. 대신 일본의 대표적 NGO인 JVC(일본 국제 자원봉사센터)가 '정부 지원금이 전체 재정의 1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내부 규정을 두는 것처럼 자체 가이드라인을 가질 것을 권고했다. 또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립재단을 설립해 이를 통해 재정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한국비영리학회가 주관한 4분과 토론에서 이희창 경복대학 복지행정과 교수와 박희봉 대진대 국제학부 교수는 '사회자본과 지방정부의 대응성'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사회자본이 풍부할수록 지방정부의 대응성(지역주민의 요구를 지방정부가 반영하는 정도)이 높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 교수와 박 교수는 "지역 내 사회자본 형성은 지역발전을 위한 전제일 수 있고, 오늘날 지방정부가 수행해야 할 최대과제"라고 주장했다.

김기찬 기자

*** 가난과 가족복지

한국가족복지학회가 주관한 6분과 토론에서 이소희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의 빈곤화와 가족복지'라는 주제발표에서 "아동 빈곤화 극복을 위해서는 가족을 포함한 사회.국가 모두의 공동책임을 인식하는 다중책임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다중책임의 사례로 가족이 아동을 보호하지 못할 때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빈곤아동을 구제하는 제도의 도입을 들었다.

그는 또 아동 빈곤화 극복의 방안으로 담세율 상향조정 등을 통한 복지재정 확보를 들었다. 이는 희망 공유와 고통 분담이라는 차원에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빈곤아동과의 결연, 위탁보호, 입양 등의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아동 및 청소년 보호를 위한 인터넷상의 공동체운동을 벌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이 교수는 제안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황영옥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은 "빈곤에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방안 제공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부유 가정이든 빈곤 가정이든 똑같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복지학회 주관의 5분과 토론에서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복지체제의 변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이것이 국가주의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민들이 시민단체 등 '제3섹터'에 속하는 다양한 조직의 성원으로서, 사회복지에 대한 공동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에 필요한 재정을 국가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도 이에 따른 역할과 책임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은 국가복지의 낙후성을 혈연.학연.지연에 기초한 연줄망으로 조직된 연복지가 보완하고 있으나 대단히 폐쇄적인 특성이 있다"며 "복지체제의 변화를 위해선 기존의 닫힌 연줄망과는 단절된 새로운 제3섹터 조직들이 터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갑생 기자

*** 사회자본이란

사회자본(Social capital) 이란 사회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협조나 협동을 가능케 해주는 사회 네트워크나 규범, 그리고 신뢰를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람 사이의 연결망이나 연결망 속에 흐르는 좋은 감정을 뜻한다. 구성원이 각종 모임.협회.클럽, 지역사회의 활동에 긍정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사람과 신뢰를 쌓으면 커진다.

개념이 본격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다. 로버트 퍼트남(하버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조지 메이슨대) 교수 등이 앞장섰다. 이후 정치학회.사회학회의 관심사가 됐다. 학자들은 인간관계의 긍정적인 연결망이 집단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오늘날 미국사회의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이 한계를 맞고 있는 이유는 사회자본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퍼트남 교수는 자신의 책 '홀로 치는 볼링'(2000)에서 지난 30년간 미국 사회에서 사회자본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각종 통계를 들어 설명했다. 예를 들어 75년의 경우 미국 국민은 연간 평균 15차례 친구들을 가정에 초대한 반면 지금은 그 같은 사례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지역사회 모임 참가 횟수도 30년간 60%나 감소했다. 인간 신뢰가 무너지면서 경찰.변호사.법원 관련 직업 수가 엄청나게 팽창했다. 이 같은 인간관계의 단절, 불신이 미국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일부 사회학자를 중심으로 사회자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창호 전문위원 <changho@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 참가 학회.단체 명단=▶학회 및 포럼 (8개) 한국정치학회.한국행정학회.한국NGO학회.한국비영리학회.한국사회복지학회.한국가족복지학회.시민사회포럼.자원봉사포럼▶참가단체 (15개) 한국자원봉사협의회.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한국사회복지협의회.한국사회복지사협회.한국사회복지공동모금회.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1%클럽.신사회공동선연합.성숙한 사회가꾸기 모임.우리민족서로돕기.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한국YMCA 전국연맹.바른사회시민회의.인간성회복추진협의회.해외원조단체협의회

*** 분과별 토론 주제

▶1분과:한국 연줄사회 조직의 특성과 신뢰구조의 이해

▶2분과:시민단체 간 신뢰 형성 -현황과 과제

▶3분과:NGO에 대한 재정지원

▶4분과:사회자본과 지방정부의 대응성

▶5분과:복지사회와 사회자본

▶6분과:아동의 빈곤화와 가족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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