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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모두 웃고 있는 가족 사진, 그런데 정말 행복한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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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모든 행복한 가족들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경주·김정하 옮김
뿔, 437쪽, 1만3000원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은 일종의 경고문이다. 문학의 도구인 ‘반어’를 제대로 써먹었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이란 제목을 붙이고선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집마다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을 떠올려 보자. 사진사는 행복해서 미칠 것만 같다는 가족의 표정을 끌어낸다. 한데 실제로 그런가라고 저자는 묻는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종종 거론되는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가족을 통해 현대 사회의 비참과 허상을 고발한다. 독자들에게 ‘당신의 가족은 정말 행복한 거냐’ 다그치는 듯하다.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모두 열 여섯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족 면면은 다를지 몰라도 책의 주인공들이 불행한 삶을 그저 견디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남편의 사디즘에 고통받는 부인, 가상 현실에 틀어박힌 딸, 아버지를 속인 아들 등 평범한 가족의 사나운 초상을 그리고 있다.

책 머리에 올린 ‘많은 가족들 중 하나’는 보통의 중산층 가족 이야기다.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는다. 아들은 아버지를 내쫓은 회사에 입사한다. 어머니는 가수의 꿈을 쫓고, 딸은 리얼리티 TV 쇼에 갇혀 지낸다. 이 소설에서 가족은 다만 파편으로서만 존재한다. 서로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각각의 상황에만 매몰돼 있다. 술을 매개로 아버지와 아들이 속내를 털어놓지만, 화해에까지 이르진 못한다. 가족이 삐걱이는 건 가족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비정한 세상 때문이다. 아버지를 해고했던 보스는 아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한다. “회사는 자네가 있든 없든 성장하네. 자네는 잉여 인원으로 있는 것이니 일자리는 특혜를 받은 것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되네.”

뛰어난 소설가·극작가이자 탁월한 외교관이기도 한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남미의 대표적 작가다. [뿔 제공]

라틴 아메리카가 책의 배경이지만 우리가 흔히 겪었던 가족의 모습도 담겨있다. 이를테면 ‘반항적인 아들’에선 장래를 놓고 아버지와 갈등을 벌이는 네 아들이 등장한다. 성직자가 되길 강요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속이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아들들이 갈등을 벌인다. 책은 이 밖에도 딸을 살해한 살인자에게 편지를 쓰는 어머니(‘어머니의 아픔’), 성공한 동생과 주정뱅이 형(‘불편한 형’) 등 다양한 가족의 상처를 드러낸다. 생채기난 가족들의 삶이 참 빤하고 애달프다.

저자는 매편의 말미에 산문시 형식의 별도 글을 배치했다. ‘거리 여인들의 합창’ ‘위험에 처한 딸의 합창’ 등으로 이어지는 합창 시리즈다. 열 여섯 불행한 가족 이야기와 맞물려 책이 빚어내는 서글픔이 극대화 된다. 그러니까 이 불편한 가족 소설이 던지는 물음은 이런 것이다. 저자가 등장 인물의 목소리로 되물었다. “가족은 지루해서 완벽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완벽해서 지루한 것이었을까.”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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